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35> "예수가정" 공동체와의 인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35> "예수가정" 공동체와의 인연

입력
2003.10.31 00:00
0 0

국제기아대책기구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중국의 '예수가정'이란 공동체를 도와준 일이다. 예수가정은 교회와 믿음으로 하나된 공동체로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체제에서 살아남은 특이한 단체다.예수가정은 오래 전 책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오랫동안 공동체를 이끌어온 나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했던 예수가정은 '수확물 전체를 굶주리는 이들에게 나눠주자'는 모토를 세우고 있었다. 나도 양주의 농장을 공동체의 재단에 헌납하고 무소유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예수가정의 신념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예수가정은 중국 공산당이 들어선 뒤에도 살아 남았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번은 예수가정을 질시하는 이들로부터 투서를 받은 중국 공산군이 예수가정을 혼내주겠다며 마을을 들이닥쳤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 어귀쯤에서 공산군 일당은 닭 한 마리가 한쪽 다리를 헝겊으로 동여맨 채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괴이하게 여긴 공산군 간부가 헝겊을 풀어보니 달걀하나가 그 안에서 나왔다. 마을에 도착한 공산군들은 애초의 방문목적도 잊고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부터 물었다. 마을사람들은 "우리가 기도를 하고 있는 교회에 모르는 닭이 찾아와 알을 낳았는데 닭과 알의 주인을 찾을 길이 없어 알을 닭에게 묶어 보냈습니다"고 태연히 대답했고 할 말을 잃은 공산군은 인민재판을 할 생각도 못하고 그만 철수했다고 한다. 그들의 순수함과 정직이 이념의 장벽을 녹여버린 셈이다.

나는 이런 예수가정이 그래도 문화혁명의 회오리 속에서는 모두 사라져 버린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기아대책기구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우연히 예수가정이 아직 한군데 남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그 공동체가 있다는 산둥(山東)성을 찾았다. 아직 한중수교가 안됐던 때라 중국 공안당국의 저지로 하루정도 지체되기는 했지만 린취(臨駒)현에 있는 예수가정 공동체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 '애덕병원'이라는 간판과 함께 십자가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종교공동체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인데 마을 입구에 십자가까지 걸려있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보니 그 정도의 대접은 받을 만하다는 수긍이 갔다. 예수가정은 초창기의 공동체를 유지하지는 못하고 의사 5∼6명과 간호사 5∼6명이 병원을 운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정도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 병원이 초창기 예수가정의 철저한 이념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중국 의사들의 월급이 200위안 정도였다면 이들은 약 4분의1인 45위안을 받고 진료를 하고있었다. 자신들의 생활비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이 수가를 낮게 받는 이유였다. 돈 없는 농민과 노동자를 위해 무료진료를 해 주는 것은 물론이었다. 이런 모습에 공산당도 감동해서 병원 간판에 십자가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 삼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의료쪽에는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병원시설은 형편이 없었다. "뭐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묻자 "X레이 설비와 앰뷸런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나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에 이런 사정과 관련한 지원방안을 공식적으로 상정해 원조를 이끌어냈다. 우리는 예수가정 병원뿐 아니라 정부의 지원을 받고있는 현(縣)내의 공공병원에도 의료시설을 보내 현 정부와도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됐다.

예수가정에는 이후에도 내시경 등의 의료시설을 몇 차례 더 지원해 주었고 예수가정과 현 정부 관계자들은 풀무원 농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현 정부는 나에게 임시거주증을 만들어주겠다는 호의까지 베풀었지만 큰 필요가 없어 정중히 거절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