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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아주 특별한 밥상-별미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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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아주 특별한 밥상-별미김치

입력
2003.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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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날, 어머니가 땅속 독에서 갓 꺼내와 식탁에 올려 주던 빨간 빛깔의 김치, 손으로 갈기 찢어 한입 물면 밥이 절로 넘어갔던 그 새콤함과 청량감.김장철이 코앞에 다가왔다. 요즘엔 핵가족화와 식생활의 변화, 다채로운 상품 김치의 등장 등으로 김장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래도 이맘때면 어릴적 어머니옆에서 배추속을 새빨간 양념에 버무려먹던 그 기억에 가슴이 설렌다.

'김치 대모'와 '김치 박사'가 만나다

그 추억을 되살리며 김장날의 정겹던 풍경을 재현하기 위해 두명의 김치 전문가가 자리를 함께 했다. 국내 상품김치 시장에서 수위권을 달리고 있는 한성식품의 김순자(49) 사장과 조재선(67) 경희대 식품공학과 명예교수.

롯데 힐튼 조선호텔 등 특급호텔과 백화점 홈쇼핑 등에서 판매되는 ‘정드린 한성김치’의 맛을 개발한 김 사장은 김치 관련 특허만 11개를 갖고 있는 국내 ‘김치의 대모’다. 포기김치, 돌산갓김치, 고들빼기 등 50여가지의 김치를 내놓은 그는 올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발명전에 직접 개발한 ‘깻잎양배추말이 김치’와 ‘미니롤 보쌈김치’를 들고 나가 각각 금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김치 연구에만 20여년을 보낸 조 교수는 김치에 관한 학술적 교과서인 ‘김치의 연구’ 등 관련 서적 3권과 10여편의 논문을 쓴 공인 ‘김치 박사’다.

“올해 김장 김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김치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새롭게 접근해 보죠. 보기에도 좋고 참신한 그런 김치가 좋겠죠.” 두 사람은 세계무대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김치를 만들기로 했다.

“김치를 너무 가까이 하다보니 하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김치담기도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답니다.”

'김치를 예술로' 미니롤보쌈 김치

먼저 미니롤보쌈 김치. 재료를 다루는 김 사장의 손길이 바빠진다. 무채를 썰어 소쿠리에 넣고 고춧가루를 붓는다. 손길이 닿으면서 벌겋게 변해가는 무채가 벌써부터 익는 듯 하다.

“손으로 너무 많이 휘저으면 맛과 신선도가 떨어져요. 적당히 잘 섞일 정도로만 버무리면 돼요.” 당근 고추 등 각종 야채를 잘게 썰어 넣어 다시 한번 버무린 후 미리 준비해 놓은 잘 익은 배추 잎을 펼쳐 무채 속을 얹는다. 배추 잎을 조심스럽게 말으니 영락없는 ‘김치롤’. 김치 보쌈이라고 하기에는 폭이 가늘고, 얇게 말면 빨간 김밥 같이도 보인다.

“배추 잎을 말기 전에 한 공정이 더 있는데 죄송하지만 그것은 말 못해요. 비즈니스와 관련된 노하우거든요.” 맛이야 어떻든 보기부터 예사롭지 않다. ‘김치가 저렇게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돌돌 말은 김치롤을 그릇에 요리조리 놓으니 색상이 너무나 아름답다.

한 점 주워 맛을 본 조 교수가 툭 던진다. “잘라 노니까 한 입에 쏙 들어가네요. 점잖은 자리에서 먹기에 좋겠네!” “롤처럼 돌돌 말아 놓기 때문에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냄새가 덜 나요.” 김 사장은 이런 김치는 선물하기에도 좋다고 추천한다. 물론 손님에게 내놔도 손색이 없다.

김치를 계속 집어 먹는 조 교수. “그냥 배추 김치 먹을 때 보다 씹는 감이 질겨요. 그래서 젊은 사람이 좋아하겠네요.” 김교수는 김치광이다. 평소 식당에서도 김치 3종지는 시켜 먹는데 밥보다 김치를 더 많이 먹는다. “저는 김치하고 물만 있어도 식사가 돼요. 주식이 밥이 아니라 김치라니까요.” 끼니를 밥 대신 배추 반포기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고.

'새콤달콤 아작아작' 깻잎양배추말이 김치

다음은 깻잎양배추말이 김치. 양배추를 펼쳐 놓고 적채와 깻잎 등을 얹은 뒤 역시 롤처럼 말으니 순식간에 작품이 탄생한다. 미나리로 옆구리를 묶어주고 준비해 둔 보랏빛 국물을 부어 주면 끝. “한 입 물어 보세요. 새콤 달콤한 맛이 아작아작 씹히는 듯 할 겁니다.” 김치를 한입 문 조 교수가 보랏빛 국물을 지나칠 리 없다. 한 숟갈 떠서 들이키니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 시큼하면서도 향긋함이 넘쳐난다.

이들 김치는 싱가포르에서도 찬사가 이어졌다. 한입 맛을 본 외국인들이 모두 “음! 굿”이라고 탄성을 토해냈다. 무엇보다 색깔이 빨개 김치 다우면서도 맵거나 짜지 않고 향기로운 맛이 까다로운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김치는 섬유질 성분이 많아 입에 들어가면 금방 안 넘어가요. 씹어야만 넘기게 되는데 씹는 동안 내장이 소화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씹는 소리가 뇌에도 전달, 뇌 건강에도 좋고 턱뼈도 발달합니다.” 조 교수의 김치 예찬론이 이어진다. “위에 들어가면 섬유질이 음식물 사이사이에 끼어 소화 효소가 넓게 퍼지는 역할을 해줍니다. 장에 내려가면 수분을 흡수, 변비도 없애주니 더할 나위없는 건강식이지요.”

조 교수는 ‘김치를 먹는 것은 건강을 거저 먹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마치 예술작품 같은 김치를 만들어 낸 김 사장의 한 마디. “김치 하찮게 생각할 게 아니죠? 아는 사람은 김치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니까요.” 이날 조 교수는 김치로 식사를 대신했다.

/글·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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