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기, 평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라크 추가파병 논란으로 혼란스러운 이 때, 제주에서 '동북아시아 평화공동체의 건설'이라는 주제로 제2회 제주평화포럼이 열린다.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주제로 2001년 제주평화포럼이 출범한 이래 세 번째 행사다.제주가 동북아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는 섬이라는 제주의 지정학적 위상이 제주에는 가능성의 요소일 수도 있고 위험성의 요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평화는 제주의 생존과 발전에 필수적 조건이다. 일제 말기, 일본본토 수호를 위해 '결7호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의 일본군이 제주에 주둔했던 사실, 제주 근대사의 최대 비극이었던 '4·3사건'의 한스러운 기억 등으로 말미암아 제주는 이미 그것을 체득했다.
비단 제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동북아의 중심에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주변의 정치 경제적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우리들이 어떻게 변화에 대처하는가 하는 점이다.
20세기 우리나라는 그런 지정학적 위험성을 강렬하게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일제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의 비극적 경험, 남북분단의 현실, 이 모두가 우리의 지정학적 여건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여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경제중심'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 것이냐가 문제이긴 하지만, 동북아 평화체제, 나아가 동북아의 경제공동체적 협력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지정학적 위상이 지닌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이라크 파병문제도 단순히 이라크문제, 중동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한미문제, 북핵 문제, 남북 문제 나아가 동북아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식과 정책담론의 대외적 수동성을 탈피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입장에서 동북아를 향하여, 세계를 향하여 국제적으로 수긍가능한 발전적 정책이슈를 던져야 한다.
제주는 이러한 이슈를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계속 던져왔다. 동북아 평화, 동북아 공동체라는 주제로 이어지고 있는 제주평화포럼이 그것이고, 이 포럼을 뒷받치고 있는 '평화의 섬, 제주' 구상이 그것이고, 평화를 중심 가치로 삼아 '진실과 정의' 방식이 아니라 '진실과 화해' 방식으로 추진한 4·3진상규명 사업이 그것이고, 제주국제자유도시 구상도 결국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
정보와 권력이 중앙에 독점되어 있어, 지방이 제기하는 문제는 외면하고 경시하고 오해하는 우리 실정에서 이런 문제의식이 겪는 좌절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DJ기념관 사건'이다. 1990년대 제주에서 열린 한·소,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추진하던 '정상의 집'이 중앙의 일부언론으로부터 엉뚱하게도 'DJ기념관'이라는 오해와 공격을 받아 결국 명칭마저 변경되어버린 일이 그것이다.
지방이 제기하는 문제는 지방문제이고, 서울이 제기하는 문제는 국가문제라는 식의 편견을 버리지 않는 한 지역균형발전은 요원한 일이다. 이제 제주에 주목하고 동북아에 주목하여야 할 때다.
고 충 석 제주발전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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