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그 지지자들에게 한국 현대사의 어떤 정치인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취임하고 여덟 달이 지난 지금, 그는 지난 대선에서 그를 지지한 사람들 다수에게 매력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우선 노 대통령의 지적대로, 이 정부를 둘러싸고 있는 의회 환경과 언론 환경이 매우 모질다. 여론 시장과 의회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언론과 야당의 수구 동맹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통령 개인과 정부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폭언을 퍼붓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해 왔다. 그들은 스스로 기여한 바가 거의 없는 한국 민주주의의 과실을 누구보다도 탐욕스럽게 먹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옛 지지자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이 반드시 이 적대적 언론과 야당의 선동 탓일까?
아니다. 대북 송금 특검법 공포에서부터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에 이르기까지, 노 대통령은 줄곧 지지자들 다수의 뜻을 거스르며 반대파를 기쁘게 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왔다. 그는 시민 사회의 개혁적 요구에 차갑게 응답했고, 내란 선동에 가까운 수구 분자들의 헌정 파괴 책동에 너그러웠으며, 미국의 일방주의에 보기 민망하리만큼 굴욕적으로 휘둘렸다. 얄궂게도, 노 대통령은 수구파의 조롱을 날마다 받아가며 결국은 그들의 정파적·계급적 이익을 실현시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제 이익을 관철시키면서도 책임을 직접 지지 않아도 되니, 수구 세력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들 가운데 계산 속 밝은 자들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 잘 뽑았다고 말이다.
그러면 그들은 왜 이런 '어여쁜' 정부에 매일 말의 돌팔매질을 해대는가? 우선, 그들이 노무현 개인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주류에 끼일 만한 번듯한 배경을 못 갖춘 이단자가 국정의 최고위직에 있는 것이 그저 싫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비판은 정부의 정책보다는 대통령의 언동이나 스타일을 겨누고 있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아무리 어여뻐도 남의 당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그들이 차지해야 할 당장의 밥그릇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 동아리가 차지했어야 할 금박 입힌 자리들을 노무현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싫은 것이다. 얼마나 싫은가 하면, 그 돌팔매질로 나라가 결딴나도 상관없을 만큼 싫은 것이다.
그러니까 다수당과 언론의 무책임한 공격으로 정부의 처지가 어려워졌다는 노 대통령의 변명에 절반의 진실은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 무책임한 반대자들로부터 대통령을 지켜줄 사람은 누구인가? 결국 지난 대선 때 그를 지지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자신의 반대자들이 좋아할 정치적 결정들을 잇따라 내려 지지자들을 실망시킨 데서 더 나아가, 어리석게도 여권의 신당 놀음을 거들고 나섬으로써 지지층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특검법 공포와 마찬가지로, 신당론의 한 측면은 힘센 자를 새 친구로 사귀기 위해 그가 싫어하는 옛 친구를 멀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잃기보다 얻기가 훨씬 더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지 않았다면, 그것이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추락하는 지지율 속에서 노 대통령은 난데없이 재신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법적 논란을 떠나서, 이 재신임 카드는 윤리적으로도 바탕이 무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지지자들에 대한 정치적 자해공갈이기 때문이다. 그의 잘못으로 서로 갈라선 지지자들은 위기에 빠진 옛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 힘을 합칠 것이고, 미국이 저지른 침략전쟁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우리 젊은이들의 피흘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을 울며 겨자 먹기로 신임할 것이다. 그러나 재신임 소란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그의 지지자들은 예전의 살가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기 어려울 것이다.
고 종 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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