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태를 보도하는 국내 언론이 미국의 점령 통치에 무력 항쟁하는 집단을 '저항세력'이라고 일컫는 것이 눈에 띈다. 전혀 낯선 표현은 아니지만, 미국에 맞선 약소국 무장 집단은 예외없이 게릴라·반군·테러 집단 등으로 부르던 관행에 비춰 의미있는 변화다. 몇몇 완고한 보수 언론은 여전히 이런 중립적 표현을 꺼리고 있지만, 언론이 국제 분쟁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모두가 고심 끝에 선택한 표현은 아닐 수 있지만, 이라크의 과도적 상황에는 가장 적절한 용어라고 하겠다.■ 강대국이 개입한 분쟁지역의 토착 저항세력을 어떻게 지칭하는가는 분쟁의 본질을 여론이 인식하는 데 영향을 준다. 냉전시대 동서 진영은 서로 경합한 분쟁지역의 우호적 저항세력을 '자유의 투사'(Freedom Fighter)나 '해방 전사'(Liberation Army) 로 미화한 반면, 적대적 세력은 대의명분을 박탈한 채 반군이나 게릴라로 불렀다. 언론이 추종한 이런 선전적 표현은 분쟁 개입을 합리화, 여론의 지지를 동원하는 데 유용했다. 그러나 결과는 진정한 평화를 해치는 분쟁을 조장, 인류 사회의 참상을 더하는 데 이바지했을 뿐이다.
■ 부시 대통령은 이슬람 금식절 라마단에 맞춰 점령군 거점 등을 공격한 이라크 저항세력을 '발악적 살인자'라고 비난했다. 외세에 대한 저항세력을 반군이나 게릴라보다 정당성이 없는 범죄집단으로 모는 선전인 셈이다. 이들을 후세인 잔당이나 알 카에다와 연계된 아랍 지원병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객관적 외부 언론은 가족이 미군에 희생된 이들을 비롯해 다양한 이라크인들이 점령군을 공격하고 있다고 전한다. 가족과 부족, 민족의 정체성과 명예를 생명보다 중히 여기는 이라크인의 자긍심을 과소평가한 대가를 미국이 치르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주류 언론은 이라크 상황이 산발적 반란(insurgency)에서 조직적 내란(rebellion)으로 발전할 것을 우려한다. 점령통치에 도전하는 저항세력을 인정하는 국제법 개념을 언급한 것이 주목된다. 유럽 언론은 저항세력이 민족해방단체로 결속될 가능성까지 내다본다. 이 와중에 이 땅의 보수언론은 이라크 상황을 전하면서 저항세력의 존재를 덮기라도 할 것처럼 저항 공격의 주체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 괴이한 행태를 보인다. 반면 노골적으로 추가파병을 재촉하는 모습은 친미보수가 강박적 상태에 이르렀다는 느낌마저 준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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