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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정신현상학" 곧 나와요"/임석진교수 재개정 마무리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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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정신현상학" 곧 나와요"/임석진교수 재개정 마무리 단계

입력
2003.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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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청 인근 자택 서재에서 만난 임석진(71) 명지대 명예교수는 인쇄된 글자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B4 종이장과 한판 씨름 중이었다. 문장마다 파란색 볼펜으로 교정한 흔적이 또렷하다. 이제 마지막 3장. 한국에서 헤겔과 동의어로 통하는 그가 헤겔의 주저이자 변증법을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서양 근현대철학의 고전 '정신현상학' 새 번역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이번 번역은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겁니다. 들인 시간만 7년입니다. 재개정은 완전히 새 번역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는 1980년 국내 처음으로 '정신현상학'을 우리말로 옮겨 분도출판사에서 냈다. 그 원고를 완전히 고쳐 87년에 지식산업사에서 개정판까지 냈지만 그마저 절판된 지 오래다. 요 몇 년 사이 철학도들이 서점에서 '정신현상학' 번역본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상황이었다.

"예전 번역본은 역자 주(註) 없이 원문만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재개정판에는 역자 주를 꼼꼼히 넣어 학술서 번역의 완성된 체계를 갖추려고 합니다." 책 쪽수로 따져 전체 1,000쪽 분량인 새 번역에서 주만 100쪽이 넘는다. 거의 1,000개에 이르는 역자 주다. 특히 임 명예교수는 헤겔 철학과 동양사상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헤겔 사상을 나가르주나의 '중론',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등과 연관해 풀이한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원문 번역에 들인 공도 만만치 않다. 무려 네 차례에 걸쳐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을 고쳤다. 예전 번역을 각각 2년 만에 완성했으니 이번에는 들인 공이나 시간이 과거의 네 배에 가깝다. '정신현상학'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롭고 뜻이 정확해진다"는 그는 "그 의미를 충분히 살려 소설처럼 술술 읽고 뜻을 분명하게 새길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일본 최고의 헤겔학자 가네코 다케조(金子武藏)는 1940년대에 '정신현상학'의 첫 일역본을 내놓고, 79년에 주를 붙인 재개정본을 이와나미(岩波) 출판사에서 냈지만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원조'라는 세평답게 '정신현상학' 번역에는 70년대 이후 우리 현대사의 흔적이 오롯이 담겼다. 첫 번역부터 당시 헤겔 원전 학습에 목말라 하던 진보 지식인이나 학생운동 그룹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었다. 그는 "너무 급히 번역해 지금 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분도출판사의 책은 철학서로는 드물게 1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정신현상학' 첫 번역을 시작할 즈음 지금 한국헤겔학회의 전신인 헤겔연구회도 결성했다. 물론 임 명예교수가 주도했고, 86년 정식 학회로 재출발하면서 지난해까지 학회장도 그가 계속 맡았다. "국내외 박사 40명 정도가 주축"이라는 한국헤겔학회의 성장은 전적으로 그의 열의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66년 귀국해 서울대에서 '현대철학특강'이란 제목으로 '정신현상학'을 강의할 때 송두율씨가 학부생으로 그 수업을 들었습니다. 집으로 찾아와 헤겔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상담해 준 기억도 납니다." 독일 유학 시절 2차례 방북했다가 귀국한 뒤 박정희 대통령에게 그 사실을 털어 놓아 '동백림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그는 "그때 그 사건이나 지금 송두율씨의 경우 모두 우리 현대사가 낳은 비극"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전체 번역을 곧 마무리하고 이어 주 달기 작업을 마쳐 11월 중순까지는 한길사에 원고를 넘길 예정이다. 책은 내년 초에 나오는데 예전처럼 2권으로 나누지 않고 두툼한 한 권짜리 양장본으로 내기로 했다.

/글·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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