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빛 고운 복숭아가 봉긋하게 살 오른 모양에 얼굴이 붉어진다. 저것, 여자의 둥근 엉덩이를 닮았구나. 김선우(32·사진)씨의 두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창작과비평사 발행)를 펼친다. 산 위에서 바람과 성교해 본 적이 있는가 속삭이는 첫 번째 시 '민둥산'의 몇 구절. '몸을 눕혀 저마다 다른 체위로 관계하는 겨울풀들/ 풀뿌리에 매달려 둥지를 튼 벌레집과 햇살과/ 그 모든 관계하는 것들의 알몸이 바람 속에서 환했다/ 더러 상처를 모신 바람도 불어왔으므로/ 햇살의 산통은 천년 전처럼/ 그늘 쪽으로 다리를 벌린 채였다' 지독하게 관능적이다. 첫 번째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에서보다 시의 체액은 더욱 진하게 흘러 넘친다.김선우씨는 몸이 시화(詩化)하는 것을 오래 기다리는 시인이다. 그는 "복숭아 열매가 둥글게 자라는 건 열매가 갖고 있는 기억 때문"이라고 첫 시집에서 노래했다. 그때 복숭아가 기억하는 것은 따뜻한 쏟아지는 양수를 품은 자궁이었다. 시인은 이제 그때의 복숭아의 기억으로 좀더 깊숙하게,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시인은 자신의 몸의 근원인 어머니의 자궁으로 찾아 들어간다. '뭉텅뭉텅 햇살 베어 선연한 주홍빛 속내로만 오는 꽃대궁 속 나팔관을 지나고 자궁을 가로질러 우주 어딘가 시간을 삼킨 구멍을 찾아가는 당신 타는 울음 들어낼 귀가 딱 한 순간은 어두운 내게도 오는 법'('능소화'에서) 자궁이 내보내는 달거리를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붉은 핏물이 들어있다.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 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 깊은 우물 속에서 계수나무가 흘러나오고/ 사랑을 나눈 달팽이 한 쌍이 흘러나오고/ 재 될 날개 굽이치며 불새가 흘러나오고'('물로 빚어진 사람'에서)
자궁에서 만들어진 알몸은 그러므로 귀하다. 김선우씨 시의 힘은 육체의 에로티시즘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드러내는 데서 나온다. 그에게 시 쓰기는 몸의 원초적 감각을 인식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오동나무 아래서 내놓은 엉덩이 아래로 따뜻하고 넓게 번지는 오줌('오동나무의 웃음소리'), 아가의 찰진 살에서 나온 젖빛 고운 생밤 같은 똥 한 알('너의 똥이 내 물고기다'), 축축하게 젖은 막 태어난 것의 따뜻하고 비린 물('흰 소가 길게 누워') 같은 것이 그렇다.
시인은 몸을 탐하는 것이 우주적 성찰로 들어서는 하나의 길임을 알게 된 것 같다. 표제시 '도화 아래 잠들다'에서 흐드러지는 관능에서 한 걸음 깊어진 시인은 욕망의 헛됨을 만지게 됐다.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아래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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