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현행 연금·건강보험제도를 수술하지 않고는 선진국형 복지병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제도의 개편을 건의한 것은 예상보다 빠른 고령화의 진전이 기존 연금 및 건강보험 재정의 수급구조를 악화시켜 성장률 감소를 초래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이다.고령화로 재정부담 급증 우려
KDI는 고령화와 저출산의 영향으로 60대 인구가 2000년 320만명에서 2020년 627만명으로 두 배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국민연금 수급자는 현재 인구 100명 당 4.5명에서 2030년 42명으로 급격히 늘어 2047년이면 연금재원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공무원, 군인연금 등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공무원연금은 이미 재원이 고갈돼 국가재정에 의존하는 상태이며, 연간 적자규모가 2010년 2조원, 2020년에는 9조3,000억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공무원연금을 자체 재원만으로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을 현재의 17%에서 40% 이상까지 인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의료비 상승으로 건강 보험료율도 현재 3.95%에서 2010년 5.86%, 2020년 8.30%, 2030년 10.22%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전국민에 최저 생계비 보장
KDI는 이날 제출한 '고령화에 대비한 경제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의 재정적 취약성과 30% 정도에 불과한 자영업자 소득 파악률 문제 등을 해결하려면 과감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의 연금 사각지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노인 빈곤층이 급속히 확대돼 국가재정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현재 실직과 생계곤란 등으로 국민연금 납부예외자가 400만명에 달하며 지역 가입자 중 4분의 1(140만명)이 보험료를 체납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KDI는 현행 단일형 국민연금제도를 중층형(전국민 기초연금+비례연금)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미국의 '사회보장세(Social Security Tax)'처럼 조세 형식으로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의 세금을 물려 최저 생계비를 보장하되(전국민 기초연금), 자기 소득수준에 맞게 보험료를 내고 연금을 수령하는 민간보험(비례연금)을 결합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국민연금 위주로 설계돼 있는 연금제도를 공적연금, 기업연금, 개인연금의 3축 구조로 전환, 국민연금을 최소한도로 축소하고 연금저축이 민간에서 이뤄질 수 있는 사적연금 활성화 정책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자기 부담 늘려 의료비 억제
KDI는 인구 고령화의 영향으로 지난 5년간 건강보험 지출 규모가 연 평균 14.9%의 빠른 증가를 보이고 있어 정부의 국고 지원과 국민의 보험료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1인당 진료비는 비노인 인구의 2.4배에 달한다.
KDI는 기존 건강보험과는 별도로 건강한 시기에 자신이 적립한 의료저축을 질병이 발생하면 인출해 진료비로 충당하는 '의료저축계좌'의 도입을 제안했다. 건강보험은 국가 지원을 통해 일반 질병과 저소득층 진료에 활용하고, 중산층 이상은 의료저축 가입을 의무화함으로써 암과 같은 중증 질병에 대처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또 폭증하는 의료서비스 수요에 대처하려면 고비용의 병원중심 진료보다 장기요양시설 확충이 효과적이라고 보고 '장기요양보험'의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KDI 문형표 박사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분야의 사회적 비용 부담을 줄이려면 장기요양보험과 의료저축의 도입을 통해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고 자기 부담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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