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가 여자가 된 날'/시적 영상속 펼쳐지는 이란 여인들의 삶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가 여자가 된 날'/시적 영상속 펼쳐지는 이란 여인들의 삶

입력
2003.10.28 00:00
0 0

아무도 찾지 않은 듯한 푸르고 고요한 바다, 검은 차도르를 뒤집어 쓰고 해변을 따라 달리는 여자들, 드럼통을 묶어 뗏목을 띄우는 아이들. '내가 여자가 된 날'(The Day I Became A Woman)은 외국에서 온 우편엽서 같은 시적 풍경으로 가득하다. '영상으로 쓴 시' 같은 화면보다 더 크게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시적 풍경 속에서 사는 이란 여성의 삶이다.어른이 되기 전 마지막 한 시간의 데이트를 허락 받은 소녀, 시집과 친정 그리고 남편이 하지 말라는 자전거 경주에 뛰어든 여인, 평생 사고 싶었던 걸 한꺼번에 사는 할머니가 차례로 등장하는 세 편의 연작이 영화를 구성한다.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아내인 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은 이란 여성의 고단한 삶에 풍부한 은유와 상징, 유머를 곁들여 이란판 '여인의 일생'을 그렸다. 억압적 이란 사회의 견고한 콘크리트를 뚫고 솟아나온 꽃 한 송이라고 부를 만하다.

소녀의 삶은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떠올리게 한다. 아홉 살이 되면 여인 대접을 받는 이란 세계에서 여인 대접이란 다름 아닌 차도르에 갇혀 사는 삶이다.

소녀는 아홉 살 생일이 되어 차도르를 선물 받지만 '태어난 시각은 정오이니 오전까지는 놀게 해달라'며 어머니에게 떼를 쓴다. 숙제를 하느라 갇힌 남자 친구와 창살을 마주한 채 소녀는 막대사탕을 번갈아 빨며 지상에서의 마지막 자유를 누린다.

영화에 펼쳐진 바다는 이 세 여인의 일생, 더 나아가 이란과 제3세계 여인의 일생을 은유한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옥색의 바다는 아홉 살 난 소녀의 삶이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서 있지 않은 헐벗은 바닷가의 자전거 도로는 여인 아후의 삶이고, 냉장고와 텔레비전 등속을 싣고 꿈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뗏목은 남편을 여의고서야 자유를 얻은 할머니 후러의 삶이다. 세 여인 역시 상징적 방식으로 강요된 삶에 반기를 든다. 소녀는 물고기 인형과 차도르를 맞바꾸고, 아후는 말을 타고 달려오는 집안 남자들을 뿌리치고 자전거 벨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후러는 남자 아이들을 부려 모래 사장에 소파와 웨딩 드레스, 그리고 가전 제품을 늘어놓는다. 이런 시적 이미지는 깊고도 강한 잔상을 남긴다.

베니스영화제를 비롯해 시카고, 토론토, 부산영화제에서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31일 개봉. 시네큐브는 2주 간격으로 마흐말바프 가족이 연출한 영화 '칠판'과 '사랑의 시간'을 연이어 상영할 예정이다. 전체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