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27일 기자회견에서 SK 비자금 10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석고대죄(席藁 待罪)한다"는 표현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정작 비자금을 누구의 지시로 수수했고,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 의혹에 대해서는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속 빈 대 국민사과'라는 지적도 뒤따랐다.최 대표는 회견 서두에서 "당의 도덕성이 이렇게 무너진 순간 당 대표로서 참담함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며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엎드려 사죄한다" "통렬히 반성한다" 라는 등의 말을 거듭했다. "제 자신이 죽을 각오를 하고 다시 태어나는 길을 갈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SK 비자금 수수 경위를 묻는 질문에는 입을 닫았다. 그는 "(100억원이) 어디에 얼마가 나갔는지 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당내적으로 조사를 하지도 않았다"며 "조사를 하더라도 밝힐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상세히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11억 수수를 놓고 줄곧 대통령 탄핵을 언급해온 것과 대비할 때, 이 같은 자세와 앞뒤가 맞는 것이냐는 소리가 당내에서도 나왔다.
다만 그는 "SK 비자금 문제를 적당히 봉합하거나, 수사를 회피할 생각은 털끝 만큼도 없다"면서 "대표로서 책임질 일에 대해서 모든 것을 걸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특히 "특검 결과에 따라 정당들과 대선 후보들은 당락에 관계 없이 사법적·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혀 기자회견장을 순간 긴장시켰다. 노 대통령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 이회창 전 총재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라면서 "내가 아는 바로는 이 총재는 (불법 대선자금에 대해) 전혀 연관이 없다"고 차단 막을 쳤다. 그러나 최 대표가 굳이 '당락에 관계없는 책임'을 언급한 것은 이 전 총재측을 겨냥한 의도된 실언이 아니냐는 뒷말이 일고 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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