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은 이제 섹스밖에 없는 것일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비롯해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애정만세' 등 피폐한 현대인의 삶을 다룬 영화는 줄곧 낯 모르는 사람과의 섹스를 스크린에 담아왔다. 2년 전 베를린영화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파트리스 셰로 감독의 작품 '정사'(Intimacy)도 마찬가지다.
이들 영화는 사막 같은 세상을 헤매는 인간군상을 소통 없는 섹스를 통해 보여줬다. 그러나 오아시스처럼 다가온 섹스는 결국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정사'는 비린내 나는 날 것 그대로의 섹스를 30분 이상이나 스크린 위에 펼치며 삶의 허망함을 반추하게 한다.
불도 켜지 않은 채 텅 빈 방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아무런 말 없이 섹스를 하고 헤어지는 이혼남 제이(마크 라일런스)와 유부녀 클레어(케리 폭스). 카메라는 발그레 상기된 뺨에서 시작해 치골의 미세한 흔들림과 근육의 떨림을 전하고 뉘엿뉘엿 지는 햇살은 황량한 섹스를 비스듬히 비춘다. 수요일마다 나누는 섹스는 하나의 의식처럼 제이의 마음에 자리 잡고, 내내 찌푸렸던 날씨는 제이의 가슴이 설렘으로 박동하는 순간 화창하게 갠다. 제이는 클레어의 뒤를 밟아보지만 클레어에겐 당구장에서 죽치고 사는 택시 운전사 남편이 있다.
'정사'의 미덕은 원제처럼 친밀함에 대한 허기로 헐떡대는 사람들의 숨결을 거칠게 드러낸다는 데 있다. 배우들은 몰래 카메라에 잡힌 사람처럼 태연하게 바텐더, 주부, 여배우로서 자신의 일상을 보낸다. 특히 '내 책상 위의 천사'로 데뷔한 뉴질랜드 출신의 케리 폭스의 연기는 묵직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데가 있다. 영화는 빛과 소리를 세련되게 조절해 가며 몸으로는 정인(情人)이지만 여전히 타인인 두 남녀의 심리를 담아낸다. 낡은 주제와 무거운 화면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름대로의 진실을 전하려는 목소리는 뜨겁다. 18세 관람가.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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