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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완전정복"/깜찍하게 망가진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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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완전정복"/깜찍하게 망가진 이나영

입력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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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이 다시 걸어 나온 듯했다. '영어완전정복'은 오드리 헵번의 로맨틱코미디처럼, 햇살 내리쬐는 노천 카페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상큼하다. 그건 모두 영주 역의 이나영(24) 덕이다. CF 요정에서 발돋움해 '천사몽' '후아유' 등으로 스크린 나들이를 했지만 그가 진정한 배우임을 팬들의 뇌리에 각인할 영화는 '영화완전정복'이 될 듯하다.그러나 그의 첫 마디는 "영주란 애가 생소해서 그런 거예요"였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낯 간지러우니 비행기는 그만 태우라"는 뜻일 게다. 스크린 속의 해맑다 못해 맹한 영주는 어느새 도도한 CF 모델의 이미지다. "하던 대로 생머리를 하고 나타나면 스태프들이 부담스러워 해요. 머리만 영주처럼 묶으면 편하게 여기고. 원래 '츄리닝' 차림인데."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함께 했던 양동근의 느낌이 났다. 솔직하고, 숨기지 못하는. 맞장구를 친다. "맞아, 되게 비슷해요. 대화도 비슷하고." 그러나 주먹만한 뿔테 안경, 이마를 가리고 어깨 양쪽으로 땋아 내린 '삐삐머리', 왼쪽 가슴에 '어린 왕자' 핀을 단 9급 공무원 영주는, 평민 차림으로 민정시찰을 나온 '로마의 휴일'의 공주의 모습이다.

영화를 찍을 땐 정신적 부담이 컸다고 했다. "시나리오에 '꽂혀서' 했지만, 장면 하나 하나를 모든 스태프가 회의를 통해 만들어가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어요.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그렇게 얻은 상황은 영주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훌쩍 커버린 이나영은 전신으로 웃긴다. 좋아하는 남자 문수(장혁)에게 '사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핀잔을 듣자 벽에 머리를 박으며 반성한 뒤 나름껏 공주처럼 치장한다. 그러나 머리엔 어울리지 않는 왕관 핀. 입술엔 붉디 붉은 루즈. "내가 '어린 왕자'와 고래를 좋아해요. 문수를 좋아하면서부터 가슴에 어린왕자 핀을 달고, CNN을 볼 때는 고래 그림이 그려진 쿠션을 껴안죠. 왕관 머리핀도 스태프들이 내 몸에 팔찌도 달아보고, 얼굴에 화장도 다르게 해보다가 나온 거죠."

소품 하나에도 정성이 들어간 탓인지 이나영의 코미디 연기는 '망가진다'는 인상보다는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이 나이를 먹어 조금 더 편해진 인상이다. "나는 코미디를 한 게 아니고 영주를 한 것"이라고 잡아 떼지만, 문틈에 갈래 머리가 낀 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쑥스러워 얼른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이나, 영어 질문에 영어로 답하지 못해 특공대에게 끌려가는 장면의 표정은 빼어난 코미디언의 그것이다. 실제로는 '너무 뒤집어져 웃는' 시사회 관객을 보면서 '(영화사에서) 심어 놓은 사람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고, 영주처럼 솔직하지 못해 짝사랑을 많이 하는 편이고, 누구를 좋아해도 슬쩍 쳐다보는 데 그치는 '소심녀'지만 말이다.

영어실력은 어떠냐고 물으니 "영주처럼 영어를 열심히 해서 코엔 형제의 영화에서 호텔 벨보이 같은 단역으로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분위기가 익어 가면서 그녀의 눙치는 코미디 감각에 더욱 물이 오르고 있었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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