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5일 외무성 대변인의 회견을 통해 사실상 처음으로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방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은 그러면서도 핵폐기와 안전보장의 '동시행동·일괄타결 원칙'을 고수해 여전히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언급한 '선(先) 핵폐기 방안과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불가침 조약 체결의 필요성이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일체 언급하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한 태도 변화다.우선 북핵 2차 6자회담의 조기 개최 등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가 마련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전망을 밝게 하는 고무적인 언급으로 본질적인 영향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북한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우선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안전보장 방안을 한국과 중국, 러시아가 지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견은 북한이 2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부시의 제안은 가소로운 짓"이라는 비공식 반응을 보인 뒤 4일 만에 나온 것으로 상당한 내부 논의를 거쳤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북미 채널의 가동을 굳이 언급한 것은 북한 역시 '대화'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이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하면 미 행정부 내 대화론자들의 입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남북장관급 회담 등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어야 대화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전달했다.
그러나 낙관적 기대는 아직 이르다는 반응이 많다. 북한이 불가침조약 체결 주장을 명시적으로 철회하거나 다자틀 내 서면 안전보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벌써 '북미 서명 + 한일중러 연대보증' 등 구체적인 북핵 타결방안까지 언급된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타결이 부각되는 형식은 여전히 기피하고 있다"면서 "북한 역시 앞으로 '법적 구속력', '조약' 등 용어를 바꿔가며 강경책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거듭 주장한 동시행동원칙도 북미간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미국은 1차 6자회담을 앞두고 한미일이 마련한 대북 해법 중 '병행적(parallel)'이라는 용어가 북한의 동시행동원칙과 혼동될 수 있다며 '순차적(sequential)'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진의는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북(29∼31일) 이후에야 윤곽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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