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4당 대표와의 이틀에 걸친 연쇄회동 결과, 대선자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은 '특검 실시'를 중심으로 한 또하나의 전선을 만들었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26일 회동에서 요구한 대선자금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전면적인 특검'은 현실화할 경우,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 전반에도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메가톤급 폭발력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을 포함한 전 정치권이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특검 실시를 둘러싼 각 정파의 신경전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물론 이날 회동에서 노 대통령과 최 대표가 대선자금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최 대표는 SK수사가 '야당탄압'이라며 반발했으나 노 대통령은 검찰 수사의 형평성에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또 최 대표는 '탄핵', '하야'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노 대통령도 대선자금에서 비켜갈 수 없음을 부각시키려 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자금의 규모 및 성격 등과 관련, '한나라당과는 다르다'며 상대적 차별성을 언급했다.
이는 앞으로의 수사 과정에서도 양측이 다르게 취급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양측이 대선자금 문제로 야기된 최근의 정국 대치에서 한치도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기류만을 놓고 보면 양측의 정면충돌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특검에 대해선 한나라당은 물론 노 대통령도 정치적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져보는 수읽기에 들어간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은 특검에 대해 "정치권이 합의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보'쪽에 가까운 것 같다. 유인태 정무수석 등이 특검에 적극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것은 한나라당 공세에 대한 방어용'이라는 시각도 있어 아직 진의 여부를 확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의 발언에 노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청와대측으로서는 특검과 관련, 야당에 밀려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고민이 있지만 한나라당도 속내까지 편한 것은 아니다. 실제 특검으로 갔을 때 과연 한나라당이 그것을 감당해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열린우리당, 자민련 등이 모두 "철저한 수사"를 외치고 있지만 특검 수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결국 특검은 치열한 신경전에 비해 '실속 없는 논란'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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