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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당진 솔뫼묘지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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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에선]당진 솔뫼묘지 재개발

입력
2003.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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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 기운에 뒷짐지고 오르기에도 시퍼 보이는, 지는 해 이고 앉은 둔덕이 마을 당산이다. 그 아래로 '서들광문' 너른 들이 바다까지 펼쳐졌다. 여기 쌀이 어떠냐고 물었다가는 '어느 나라 사시냐'고 퉁바리 먹기 십상인 찰진 땅이다. 그 들판 위 도로 하나를 두고 산 자의 마을과 죽은 자의 마을이 마주 앉아있다. 가까이 공동묘지로 쓸 만한 산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데, 일제치하 적산(適産) 땅이 된 뒤부터라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묘지'에 깃든 넋들은 길어야 100년 안쪽에 살붙이고 산 이들이어서, 주민들에게는 한 다리 건너면 누구든 먼저 인사를 챙겨야 할 자리. 해서, 주민들은 군에서 공동묘지를 재개발하겠다고 나설 때에도 핏대 세워가며 종주먹을 대지는 못했다고 했다.재개발된 공동묘지는 공원묘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투명하고 밝아, 좋은 자리 보아 나란히 눕고싶을 정도였다.

옛적 솔뫼묘지는 여느 공동묘지와 다름없이 심란했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았던 시절, 마마라도 한 차례 돌고 나면 가마니떼기 장례가 예사였다. 궂은 날이면 주둥이에 벌건 핏물 바른 매구들이 묏등 위에서 벅구를 쳤고, 파헤쳐진 무덤에 반 남은 송장이 어지럽던 기억까지 있는 이들로서는 한낮에도 사위스럽던 곳이 솔뫼묘지였다. 세월이 나아졌어도 6·25 전까지는 사정이 별반 다를 게 없어, 강아지 묻듯 흙 몇 삽 떠놓고 떼 몇 장 얹는 매장도 더러 있었다. "없는 사람 초상나면 상주가 셋이유. 이장이 맞상주구, 군수 지서장이 건을 쓰는 규." 보통학교 교과서부터 중학교 입학시험 문제까지 기억한다는 송산2리 이장 김기춘(62)씨가 '본 디로 기억나는대로 하는 말'이라고 했다. 말이 그렇지, 연고 없이 숨진 이들의 가난한 장례가 오죽했을까. 어지럽게 앉은 공동묘지 유택 열에 일고여덟은 비석이 없었고, 봉분조차 허물어져 쑥대가 뒤덮은 것도 적지 않았다.

공동묘지 재개발은 당진군이 작심하고 덤벼든 일이었다. 군 권역 내 공동묘지만 60곳에 이르지만, 볕 잘 들고 찾기 쉬운 자리는 이미 터를 쓴지 오래여서 실상은 만장(滿葬)이나 다름 없었다. 급기야 외지 묘지관리업자에게 정미면 수당리에 공원묘지 개발 허가를 내주려던 게 1994년 일. 하지만 주민들은 생사를 걸고 이 일에 맞섰고, 도로를 막고 원정시위를 벌여 도 전체가 들썩이자 급기야 군은 계획을 백지화했다. 이어 내놓은 안이 기존 공동묘지를 재개발하자는 것. 1996∼97년 처음 손을 댄 석문공동묘지는 마을과 떨어진 외진 곳이어서 다행히 주민들과의 큰 마찰은 없었다.

서들광문 솔뫼묘지(99∼2000년)는 두 번째 사업지구. 평지여서 재개발 비용이 적게 들고, 마을과 닿아 있어 환경 개선에도 일조하겠다는 게 군의 계산이었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워낙 자리가 좋아 가만히 두면 서울 미아리나 망우리처럼 멋지게 재개발될 수도 있는 것을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것. "여그가 왜놈들 때매 송장자리가 됐지만, 이래 뵈도 김대건 신부가 난 들이여. 사람이 살믄 큰 인물 나는 터여." "서해안시대가 온다매? 빌딩을 세워도 시원찮을 마당에 본격적으루다 공원묘지를 앉히면 우리는 뭐여? 허구헌 날 송장차나 보란 말이여 시방?"

줄다리기 끝에 마을과 군은 전체 3만7,000평 가운데 1만2,000평만 재개발하고, 나머지 유택들은 그대로 두기로 합의했다. 700여 기를 파묘했다. 유족들이 이장시킨 것을 제외한 150기는 새로 조성된 묘원에 개장하고, 유족이 나타나지 않은 무연고 분묘 480기는 유골을 화장해 납골당에 모셨다. 그러고도 3,000기 가까운 일반 분묘(2.4평)와 납골묘(9평) 자리가 남았다. 당진군의 묘지 재개발사업은 그 사이 경남 남해군을 비롯, 전국의 적지 않은 지자체에서 찾아와 한 수씩 배우고 간 성공작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평은 다른 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공원묘지가 되고 보니 너나없이 자리 탐이 나는 판인데, 하루가 다르게 묏등이 늘어가니 행여 '내 자리'가 안 남을까 불안해진 것이다. 묘지 분양가가 사설 공원묘지의 절반도 안 되는 헐값(약 150만원선)인 데다 조경이며 시설은 최상급이고, 군에서 관리하니 오죽 든든한가. 그래서 마을과 군은 사망시점부터 6개월 이상 마을에 주민등록이 있는 이에 한해 묘를 쓰도록 조례를 정했던 것인데, 알게 모르게 위장전입자가 생겨나더라는 것이다. "갈 날 받아놓은 사람들이 사위네로 아들네로 주민등록만 옮겨놓고, 죄다 이리로 들어와서 눕는 겨. 이 판국이니 우리 겉은 우강 들놈들은 워쩔껴." 그나마 그 돈마저 없는 이들은 공원묘지 옆 기존 공동묘지로 가게 될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규격화한 연립주택처럼 줄 맞춰 앉은 묘택에 이웃하려면 대리석이라도 둘러야 하고, 그러자면 못해도 수백 만원은 들여야 한다. 한 번 쓰고 태워 없애는 15만원 짜리 꽃상여 하나 살 돈 아끼려고 동네 상여 얻어 타는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다. 반면에 공동묘지는 비집고 들자면 공짜로 누울 두 평 자리야 아직은 있으니 말이다.

주민들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싸게 분양하고, 외지에서 편법을 써서 들어오는 이들에게는 비싼 값으로 분양해줄 것을 내심 바라는 눈치다. "남우 동네 산에 뫼를 써도 동네 사람들이 상여 길 막고 안비켜 주믄 상주들이 통행세루다 얼매씩 내놓는 게 전통이여. 그 돈이 마을 기금인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제 묘지 재개발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주민은 많지 않다. '손도 댈 생각 말라'며 완강하게 버티던 마을 어른들부터 조성된 묘역을 둘러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년부터 시작할 대호지면 장정리 공동묘지 재개발사업은 지역 군의원과 주민들이 먼저 청해서 시작하게 된 사례다. 군은 대호지 묘지 외에 한 곳을 더 개발해, 군 4개 권역별 한 개의 공원묘지를 둔다는 계획이다.

당진 주민들은 이제 죽어서 누울 자리 하나 만큼은 아무 걱정이 없게 됐다.

/당진=최윤필기자walden@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死後복지 관심은 결국 산者를 위한 행정

주민들의 사후(死後) 복지를 챙기는 행정이니, 배 부른 소리로도 들린다.

산 사람 복지가 급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권갑순 부군수는 묘택도 결국 산 사람을 위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만큼 당진군의 묘지수급 불균형은 절박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비는 납골당 건립비용에 한해 지급됐다. 30억원 남짓 투입된 재개발 사업비는 주로 군 복지예산으로 충당됐고, 일부는 도에서 보조했다. 아직 노인종합복지회관도 없고, 장애인·여성회관도 하나 없는 군 살림이니 오죽했을까.

권 부군수는 "새롭게 묘역을 개발하는 것도 아니고, 기존 묘역을 정비하면서 납골묘와 납골당도 조성하는 일이니 화장문화를 권장하는 정부 방침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다"며 "시범사업 차원에서라도 국비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아파트재개발처럼 세수사업도 주민 유입사업도 아니다. 그 일에 공무원들은 피를 말렸다. 봉분 수 세느라 엄동 눈 내린 날을 택해 공동묘지를 누벼야 했고, 주민 설득과 개장 공고, 연고자 확인 과정도 만만찮은 일이었다. 공사 기간에는 시종 인부들과 함께 지내며 묘역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봉분마다 번호를 부여해 사진을 찍었다.

뒤늦게 나타난 연고자들에게서 육두문자를 듣는 경우도 적지 않았고, 이장비 시비에 휘말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묘지 개개발 안을 내고 줄곧 사업을 도맡아 온 이향주(여·54) 사회복지과장은 "고충이야 그 정도만 해두자"고 했다. "좋은 자리 조성하면 그게 모두 우리 군 음덕(陰德)으로 돌아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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