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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어느 배화교도의 어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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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어느 배화교도의 어린날

입력
2003.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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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땐 시골에 집집마다 삼을 심었다. 요즘 말로 하면 대마고 마리화나이다.성질 더러운 사람을 '삼밭의 모기' 같다고 한다. 대마 진을 빨아먹은 모기이니 여간 극성스럽고 억셀까. 삼베 올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검은 점이 바로 모기가 진을 빨아먹은 자리다.

할아버지가 삼밭에서 삼을 잘라온다. 마당가에서 줄기만 남기고 우듬지와 잎을 쳐낸다. 그리고 그 줄기를 가마솥에 삶아 껍질을 벗겨낸다. 이 껍질을 이빨로 잘게 찢어 한 가닥 한 가닥 실을 이어 붙인다. 여기서부터 베를 짜는 일까지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일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가을 찬바람이 불면서부터 할아버지가 계시는 사랑방에 군불을 때는 것이다. 청소를 겸해서 마당가에 날리는 가랑잎도 긁어 때고, 얼마 전 껍질을 벗겨낸 삼줄기와 삼잎도 갈퀴로 긁어 아궁이에 넣는다.

이제야 기억이 난다. 어릴 땐 그냥 불 앞에 앉아 있어 얼굴이 홧홧거리고 몽롱한 줄 알았는데, 유독 어느날 그렇게 온몸이 공중에 붕 뜨듯 불 앞에서 홀망(惚茫)했던 날이 있었다. 당시엔 몰랐으나 보다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아, 그 때문이었구나'하고 알게 된 내 연기의 추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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