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에서의 생활 가운데 현미식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어릴 적부터 농사를 지어온 데다 체격도 커서 다들 나를 건강체질로 여겼지만 실제는 그리 튼튼한 편이 아니었다. 특히 어릴 적 간디스토마에 감염돼 어지러운 증상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이런 증상들이 현미식을 하면서 거짓말같이 깨끗이 사라졌다.현미식은 양주로 옮긴 직후부터 시작했는데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양주 공동체 초기에는 일손이 모자라 마을청년들을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청년들과 함께 나도 가래질을 했는데 청년들은 하루를 하고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뒤로 물러났다. 내가 너무 앞서가니까 힘들어서 따라갈 수가 없다는 불평이었다. 회갑을 넘은 나이였지만 청년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많이 회복됐던 것이다.
90년대 초반 식품가공 공장을 하기 전까지는 손에서 한시도 삽이나 낫을 놓은 적이 없다. 들이나 축사, 비닐하우스에서 공동체 식구들을 진두지휘하면서 함께 일을 했다. 땅을 파거나 거름을 뒤집는 힘든 노동이 아니라면 아직도 나는 몸을 움직이고 있다. 아직은 건강하다는 증거이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건강이 악화할 것을 우려한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포클레인은 내가 직접 운전한다. 손발만 움직여서 간단히 조작할 수 있는데다 일의 효율이 뛰어나 농장에서 기계를 사들일 때부터 조작법을 배웠던 것이다.
1992년 정부관계자와 시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리우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장도에 올랐을 때 내 건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까지는 무려 23시간 반이나 걸리는 기나긴 여정으로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모두들 녹초가 돼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일흔여덟의 나만 유독 끄떡없자 다들 '비결이 뭐냐'고 묻곤했던 기억이 난다.
1995년 글로벌500상을 수상하러 남아공을 갈 때도 18시간 반이나 걸렸지만 마찬가지로 나는 이상이 없었다. 그 때도 동행했던 사람들이 내 체력에 놀랐지만 더 놀란 사람들은 현지인들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 나타나자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어디서 왔냐, 나이가 얼마냐"하면서 관심을 나타내곤 했다.
지금도 우리 나이로 90인 나를 두고 '어떻게 그렇게 건강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현미식 덕분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현미는 건강뿐 아니라 심성개조와도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미국의 상원에 '맥거번 보고서'라는 식품영양관련 보고서가 제출된 적이 있다. 내용인즉 캐나다 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육식과 흰 빵을 금하고 통밀로 만든 빵을 오랫동안 공급했더니 신경질적이던 아이들이 온순해졌고 선생님 지시도 잘 따르게 됐다는 것이다. 통밀에는 흰 밀에 없는 씨눈이 남아있는데 이 씨눈에는 '감마오리자놀'이라는 신경안정물질이 들어 있어 아이들을 변화시켰다는 게 결론이다. 밀과 마찬가지로 쌀도 흰쌀에는 씨눈이 없지만 현미에는 씨눈이 그대로 붙어있다.
나는 보고서의 실험과 비슷한 광경을 공동체에서 목격하고 현미의 효과에 대한 믿음을 굳혔다. 보통 신참이 들어오면 '박힌 돌'이 텃세를 부리기 마련인데 공동체에서는 도리어 '굴러온 돌'이 텃세를 부리는 광경을 종종 목격했던 것이다. 공동체 식구들과 신참들의 차이라면 현미식을 한다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른 현미식 예찬론자들은 심지어 '사자도 현미를 먹으면 온순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현미식이 좋아도 5%정도의 사람들은 체질상 안맞는다고 한다. 큰 아들 혜영이가 그런 경우로 현미식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소화가 안돼 번번이 고생하고 있다. 현미식의 비결이 있다면 오랫동안 뜸을 들이는 것이다. 밥이 끓은 뒤 40분 정도 뜸을 들이면 흰밥보다 더 부드러워져 먹기가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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