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민족은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족한 소수민족으로 전반적인 역사 발전을 거치며 찬란한 문화를 창조했으며 이는 중화민족의 역사문화 구성에 빛나는 한 몫을 했다.'22∼24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고구려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중국 학자의 논문 첫머리에 실린 문장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모두 순수하게 학문적 관점에서 발표와 토론을 이끌어 가는 데 반해 유독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한 부분임을 먼저 밝히는 치밀함을 보였다.
짧은 문장이지만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그 문화를 '중화민족의 역사문화'라고 밝힌 것은 중국의 고구려사관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며, 북한이 고구려 벽화와 고분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했을 때 중국이 적극적으로 반대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4월 각 신문에는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 세계문화유산 등록 확실'이란 기사가 나갔다. 그러나 두 달 뒤에 열린 유네스코 제27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6월30일∼7월5일·파리)는 일부 국가의 반발을 무릅쓰고 북한 고구려 유적의 문화유산 등재를 보류했다. 이 같은 결정에는 5월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북한 고구려 유적이 원형 변질, 보전기술 부족 등의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보완한 뒤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과 공동 등재할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는 바로 중국 칭화(淸華)대학 교수가 제출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은 북한보다 2년 늦게 2월에 갑자기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신청했다. 북한과 달리 중국은 고구려 벽화 고분은 물론 광개토대왕비, 국내성 등 옛 국내성 지역인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의 모든 고구려 유적과 고구려 첫 수도인 홀본성(졸본성)지역을 묶어서 대규모 유적군을 한꺼번에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두 지역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하고 나서 여기에 투입한 예산은 수백억원이 넘었으며 불과 1년도 안 되는 사이 유적 주변의 주민을 이주시킨 것만 해도 500호가 넘는다고 한다. 중국은 중앙당 차원에서 이 문제를 급하게 추진하여 유적정비사업을 마치고 9월 초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사를 마쳤다.
이제 내년 6월 중국 수저우(蘇州)에서 열리는 제27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내년 회의에서는 모두 세 가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먼저 신청한 북한의 고구려 유적이 등재되는 것, 둘째 완벽한 준비를 한 중국의 유적이 등재되는 것, 셋째 두 나라 유적이 한꺼번에 등재되는 것이다.
우선 북한의 고구려 유적만 등재되는 것은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 거의 완벽하게 등재될 것으로 믿었던 북한의 유적이 중국의 로비로 밀려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의 분위기로는 북한과 중국의 신청이 별도 심사될 경우 중국이 오히려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 자국에서 문화유산위원회가 열리는 데다 고구려 유적의 규모나 정비상태가 북한보다 나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마지막으로 두 나라 유적이 동시에 등재될 수도 있으나 이는 많은 논란을 부를 수 있다. 현재 유네스코에는 한국 7건 등 세계적으로 754건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이 가운데 같은 유적을 2개국이 동시에 등재한 것은 프랑스∼스페인 국경의 가톨릭순교루트 단 1건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고구려 역사가 어느 나라 역사에 속하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온 국민이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세계문화유산위원회 회원국에게 고구려사가 우리 역사임을 알려야 한다. 한편 국가적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고구려사의 분명한 자리매김을 위해 그를 전후한 역사의 정체성을 학술적으로 확인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할 것이다.
서 길 수 서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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