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서운 속도로 유행이 바뀌는 사회에 살고있다. 아이들은 휴대폰의 벨소리를 몇 주가 멀다 하고 바꾸고, 어른들은 새 차를 산지 3년도 안돼 차를 바꿀 생각을 한다. 신제품도 나올 그때만 잠시 주목받을 뿐, 곧 사라진다. 연예인의 생명은 더욱 짧아 중고생 사이에서 '서태지'라는 이름 석자를 아는 이들이 별로 없다.의학담당 기자로 취재를 하다보면 이 '새 것 콤플렉스'가 의학계에도 똑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안과에선 '최신 기종으로 업그레이드된 라식 수술기'를 내세우고, 미용성형의 유행은 쌍꺼풀, 코높이기, 유방확대수술, 지방흡입을 거쳐 치아교정과 미백, 라미네이트시술로 급속히 넘어가고 있다. 고가의 수술기에 들인 투자비를 회수하려다 보니 '라식 공구(공동구매)'라는 덤핑 수술까지 등장한다. 미용시술만 그럴까? 물론 아니다. "15분에 허리가 낫습니다" "10분이면 끝납니다"라며 척추 수술시간을 놓고 경쟁하는 광고문구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의료에서의 빠른 유행은 단순한 과소비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빠른 유행과 왕성한 소비력은 우리 디지털 산업을 성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의료시장이 유행에 힘입어 같은 식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할 순 없다. 개개인에겐 치명적인 폐해가 때로 5년, 10년만에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섣부른 약물 처방으로 부작용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는 1950년대 유럽에서 입덧을 없애려 처방했다가 팔다리 없는 기형아를 낳게 만든 약물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멀리 갈 필요없이 우리 주변에도 비슷한 예를 들 수 있다. 10여년 전 '드디어 디스크를 정복했다'고까지 했던 카이모파파인 주사치료에 대해 한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에서 섣불리 시술하지 않던 시절, 우리는 용감하게 시술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 정도였다. 그 결과 요즘 카이모파파인이 디스크 수핵을 녹여 아예 척추뼈가 내려앉는 후유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미 식품의약국(FDA) 등의 승인은 없었다.
간혹 승인되지 않은 신치료법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될 때, 특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려있을 때, 이를 환영하기보다 우려를 표하는 의사들이 많다. "외국에선 아직 동물실험 단계인 치료법에 대해 우리 국민은 돈 내고 시험대상을 자처한 꼴"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방도'를 구하는 절박한 형편이라면 모를까, 신치료법을 앞서 받아들일 땐 어느 정도 모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의료에서는 '새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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