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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지만 좋은 작품위해 의기투합"/"게임의 종말" 장두이·정일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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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지만 좋은 작품위해 의기투합"/"게임의 종말" 장두이·정일성씨

입력
2003.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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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의 작은 얼룩이 될 것이다." "잠깐, '텅 빈 공간 속에서 어둠에 싸여 영원히 앉아있게 될 것이다'가 빠졌어."연극 '게임의 종말(Endgame)'이 23일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개막하기 직전까지 장님에 중풍 환자인 햄 역을 맡은 배우 장두이(51·사진 왼쪽)는 대사를 왕왕 잊었다. 연출을 맡은 극단 미학 정일성(62·사진 오른쪽) 대표는 그 때마다 대사를 일러주며 "빼어난 배우인 두이가 저 정도니 정말 쉽지 않은 연극"이라고 내뱉아야 했다.

'게임의 종말'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아무 의미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적 인간 군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아일랜드 태생의 프랑스 작가 새뮤얼 베케트(1906∼1989)가 '고도를 기다리며'로 반(反) 연극의 선구자로 떠오른 지 5년 뒤인 1957년에 썼다. 출구가 없는 닫힌 공간 속에서 세계의 난폭한 지배자인 햄과 그의 노예 클로브, 그리고 햄의 부모로 쓰레기통에 갇혀 지내는 나그와 넬이 허무한 언어를 끊임없이 늘어 놓는 게 극의 전부다.

'게임의 종말'은 난해하고 무대에 옮기기 어려워 그 동안 거의 공연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학교 연극반이나 아마추어 극단이 공연한 걸 빼면 극단 미학이 사실상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게임의 종말'을 무대에 올리는 셈이다.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연극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품이 많이 드는 작품을 선택한 까닭을 묻자 정일성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이렇게 좋은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면 행복한 거죠. 베케트가 이 작품을 쓴 지 40년이 넘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찾아 헤매고 있으니까요."

일찍이 62년 '전위극을 지향하는 젊은 연극인 단체'를 기치로 내건 동인극장을 창단했던 그 다운 대답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작품을 손수 다시 번역한 그는 "처음 희곡을 읽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젊은 시절의 기억을 되새겼다. "대학 시절 '게임의 종말' 연출을 맡았던 적이 있어요."

배우 장두이씨의 열정도 정 대표 못지않다. 그는 24일부터 공연에 들어간 연극 '무지개가 뜨면 자살을 꿈꾸는 여자들'을 연출하랴, 12월에 자신이 출연할 모노드라마 '춤추는 빨간 피터'를 연습하랴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그런 와중에서도 일면식도 없는 정 대표의 제의를 두 말 없이 받아들인 것은 모두 '게임의 종말'에 대한 그의 애착 때문이었다. "같은 대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조금씩 변주돼 연기하기가 정말 힘들다"며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앞으로 베케트의 다른 작품도 꼭 정 선생님과 같이 해보고 싶다"고 고 덧붙였다. 공연은 11월9일까지 계속된다. (02) 763―1727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사진=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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