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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무미한 일상을 버무린 "맛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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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무미한 일상을 버무린 "맛있는 소설"

입력
2003.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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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평화롭게 '시간'이 흐른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평범한 대화를 나누고 고양이랑 놀고 야구를 보러 가는, 그런 너무나 일상적인 '시간'이 흐를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슴 찢어지는 사랑도 없고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건도 없다. 그저 노을 빛처럼 안온한 '시간'의 흐름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가는 과정은 마치 게임을 할 때와도 같이 가슴이 간질간질하고 그러다가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고 그런가 하면 어느새 폭소를 터트리고 있다. 정말 보기 드물게 재미있는 소설이다.

'컨버세이션 피스'. 호사카 카즈시(保坂和志)의 신작이다. 제목 그대로 '대화의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사카 카즈시는 이전에 '플레인 송', '풀밭 위의 아침식사', '계절의 기억' 등의 작품으로 각종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스토리라는 게 없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잔잔한 영화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아무리 그렇게 착각했다고 하더라도 코스케와 나는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에 혼동할 리가 없는데, 그것을 당당하게 혼동하는 것이 나오코 누나라서, 나오코 누나는 중화요리집에 들어가서 '우동'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하고 '볶음밥'을 주문해서 '여기 볶음밥입니다' 하고 테이블에 놓여지면 '앗!'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말을 잘못 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긴 우동도 있구나 해서 너무 놀랬어' 하고, 그런 착각을 한다." 이 부분은 화자인 나의 사촌누나 나오코의 덤벙대는 성격을 묘사하고 있는 대목인데, 이 작가의 기묘한 문체의 매력이 조금은 전달이 될지.

스토리성이 없는 소설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이 소설은 그런 이미지를 보란 듯이 배반한다. 자질구레하고 보잘것없고 사소한 일상이 이 작가의 매력적인 문장을 거치면 아름답고 스릴이 넘치는 풍경화가 된다. 읽다 보면 왠지 모를 행복감에 젖다못해 마치 도원경에 노니는 듯한 황홀경마저 맛보게 된다.

작가는 어떤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저에게 있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소설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쓰는 중에 다시 생각하고 싶은 것이 생기기 때문에 다음 것도 씁니다. 저에게 있어서 '재미있다'는 것은 엔터테인먼트라는 의미는 거의 없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을 때에도 거기서 가장 큰 재미를 느낍니다."이 소설이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것도 인간과 세계에 대해서 작가가 깊이 생각한 만큼 독자도 섬세하게 생각하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황선영 도쿄대 비교문학·비교문화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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