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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아동극으로 그릴 것"/"지하철 1호선" 2,000회 공연 앞둔 김민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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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아동극으로 그릴 것"/"지하철 1호선" 2,000회 공연 앞둔 김민기씨

입력
2003.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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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원작자인 폴커 루드비히가 1,000회 기념공연에서 '2,000회까지 하기를 바란다'는 축사를 했는데 그 당시는 지독한 저주로 들렸지요."11월9일 대학로 학전 그린 소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2,000회 공연을 앞둔 극단 '학전' 김민기(52) 대표의 핼쑥한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지하철 1호선'을 1994년부터 10년 가까이 '운행'하면서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으면 '저주'라는 표현까지 쓸까. "배우와 스태프들이 '지하철 1호선'을 하고 나면 겁나는 작품이 없다고들 한다"는 말에 10년 간의 고생이 응축된 듯했다. 현재 원주에 있는 토지 문학관에서 월∼수요일을 지내는 그는 특유의 잔잔한 저음으로 세 시간 넘게 '지하철 1호선'과 자신의 음악과 예술, 향후 계획 등을 얘기했다.

그는 2,000회 공연 직전인 11월5∼8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독일 그립스 극단의 '1호선'(Linie 1) 초청 공연에 앞서 한글 자막 작업을 위해 원작을 꼼꼼히 들쳐봤다. "연극 전문가가 아니라서 깊이 못 본 부분이 많더군요. 독일 원작이 좀 드라이하다면 우리는 신파조, 속된 말로 뽕짝입니다." 순진한 동독 소녀가 록커와 사랑에 빠져 베를린으로 상경한다는 내용과 조선족 처녀가 서울에 와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다는 설정에는 분명한 정서 차이가 있다.

많이 바꿔서 처음에 원작자가 왔을 때는 "내일부터 공연을 못 할지 모른다"고 배우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자체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보완이요? 더 바꿀 내용은 없어요. 요즘은 변화가 빠르잖아요. 10년 전 한국사회를 보는 기록의 의미로 남기고, 오늘날의 이야기는 새로운 작품으로 풀어 가야죠."

새로운 작품은 '아동극'이다. "내년쯤 3편 정도 해보려고 해요. 원작 '1호선'도 16세 이상이 보는 청소년물입니다. 그립스 극단의 아동, 청소년물은 아주 수준이 높아요. 우선은 외국의 좋은 작품을 번역하고 차차 우리 것도 만들어야지요." 그립스 극단의 폴커 루드비히(66)를 '내 영혼의 친구' '양아버지'라 부르는 것으로 보아 적잖은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그의 정체성은 말 곳곳에서 드러났다. 바로 예술의 현장성이다. "연말쯤 10·26 직전에 목숨 걸고 했던 노래극 '공장의 불빛' 음반이 다시 나옵니다. 전쟁통에 애 낳아서 힘들다고 고아원에 보내 놓고 25년 후에 호적을 찾아주는 격이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70년대 노조운동은 순수하고 소박한 휴머니티가 있었고, 생존의 문제였어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겠지만 요즘과 그 때가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시대를 관찰하는 날카로운 눈은 여전하다. " '렌트'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뉴욕 뒷골목 인생을 판타지로 만들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의 독일 원작 뮤지컬을 꼭 보세요. 베를린의 밑바닥 정서가 현재 진행형으로 흐릅니다."

그는 여전히 흥행가라기보다는 예술가다. "예술해서 재정적으로 독립하라는 말은 천민 자본주의적 발상입니다. 독일 '1호선'도 우리와 같은 수준의 입장료 3만원에 정부 보조금 7만원이 들어갑니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고 그래서 세계적 수준이에요." 현재 300억 수준에 머물고 있는 문예진흥기금의 적정 규모를 묻자 "조 단위는 돼야죠"라고 대답했다.

'지하철 1호선' 2,000회 공연 때는 역대 무대 의상과 소품 등을 내놓는 깜짝 경매도 벌인다. 그는 "좋은 물건이 있어야죠…"라고 얼버무리지만 설경구, 조승우 등 역대 출연 배우들이 소장품을 내놓고, 김민기 대표도 90년에 지인에게 받은 자신의 유일한 기타를 내놓을 예정이어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02)763―8233

/글·사진=홍석우기자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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