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해법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정치권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김원기 우리당 창당주비위원장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 26일 한나라당 최병렬 민주당 박상천 대표를 각각 만나 어떤 식으로 의견을 모을지 주목된다. 당장 관심사는 정치권 일각과 재계에서 나오는 '동시공개 후 사면론'. 대선자금 관련 범법행위를 사면하려면 일반사면을 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러나 일반사면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우선 대상 범죄를 무엇으로 하느냐를 놓고 정치권과 재계의 이해가 다르다. 정치권은 정치자금법 위반을, 재계는 분식회계 등 자금조성 과정에서의 불법행위를 용서받고 싶어할 것이다. 또 일반사면을 하기 위해선 국회 입법이 필요한데 정치권 내부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은 것도 변수다.
■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이 4당 대표 연쇄회동에서 어떤 방식의 대선자금 해법을 내놓을지 아직 확실치 않다. 현재로선 검찰수사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치권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을 찾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24일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정치권이 자발적으로 대선자금을 공개한 뒤 국민심판을 받아보자는 정도의 제안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관계자는 "대선자금 동시공개 제안은 정치권이 호응하기 어려우므로 다른 뭔가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미 7월의 기자회견과 시정연설을 통해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의 자발적 공개→수사기관의 철저한 검증→국민여론에 따른 처리 또는 사면'의 수순을 밟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고해성사와 함께 사면특별법을 만들자는 제안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으나 청와대는 이를 즉각 부인했다.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검찰수사에 정치권 모두가 압력을 넣는 격인데 국민이 동의하겠냐"는 것이다.
/고주희기자orwell@hk.co.kr
■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구상하고 있는 대선자금 해법은, 여야가 동시에 '고해성사'를 하고 특검수사 또는 선관위 실사를 받은 뒤 그 결과에 대해 사면절차를 밟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대선자금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SK비자금 100억원 파문으로 먼저 입을 떼지 못할 뿐,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할 경우 적극 호응할 태세다.
이에 따라 최병렬 대표는 26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이 방안을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은 "야당이 당하고 있는 만큼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이 의혹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이로 인한 정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상호 정치적 해법모색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최 대표 등 지도부가 틈만 나면 "노 대통령도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역공을 펴는 한편 완전 선거공영제 도입 등 정치개혁을 입에 담는 것도 이를 위한 자락깔기로 볼 수 있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 민주당
민주당은 "대선자금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자유롭다"는 전제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모두 있는 그대로 대선자금 문제를 고백하라고 요구한다. "정치권 스스로의 양심고백이 나오면 이를 참고자료로 해 검찰이 수사를 벌어야 하고, 검찰이 손을 대지 못한다면 특별검사를 도입하거나 국회 국정조사라도 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또 대선자금 모금과 운영 과정서 불법이 저질러 졌다면 원칙대로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관련 범죄에 대한 특별사면 여부는 검찰 수사와 재판 이후 두고 볼 일"이라며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박상천 대표는 26일 노 대통령을 만나 이런 당론을 가감없이 전달할 생각이다. 그는 24일 "일각의 대선자금 사면론은 검찰수사를 중단시키려는 음모이며 범죄자들끼리 서로 사면해 주기로 짜는 것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 우리당
열린우리당은 대선자금 문제의 해법에 대해 "모든 정파가 불법적 정치자금의 수수와 관행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고 국민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요하면 사면을 위한 특별법도 만들자는 게 당내 기류다. 김근태 원내대표가 24일 의총에서 "정치자금에 관해서 스스로 고백하되 조사해서 사실과 부합하면 사면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 대표는 앞서 16일 원내대표 연설에서 "현행 정치자금법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남아연방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법'처럼 정치자금 내역을 미리 스스로 밝히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정치자금특별법'을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과거의 잘못은 철저히 밝혀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며 "무조건 사면할 경우 국민의 법 감정이 이를 용납치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 재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과 기업인이 '희생양'이 되는 관행은 청산돼야 한다."
검찰의 SK 비자금수사가 여야 대선자금과 이를 제공한 기업에 일파만파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권 초기마다 비자금파문이 재계를 강타, 기업들의 대외신인도를 추락시키고 기업활동에 위축을 가져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차제에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현명관 부회장은 24일 "현재의 고비용 정치구조를 감안할 때, 정치자금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과 기업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면서 "SK사태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과거 관행과 단절하기위한 정치권 개혁과 재계의 자정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검은 돈을 매개로 한 정경유착의 고리단절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자금의 합법화와 투명화가 긴요하다는 입장이다. K그룹 관계자는 "우리나라처럼 정경관계가 수직적인 상황에서 기업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정치권의 불법자금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범법자를 양산하는 정치자금법상의 법정기부한도도 현실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그동안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다짐을 했지만 이번 SK사태에서 보듯 여전히 음성적인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대부분의 30대그룹들이 규모에 따라 수억∼수백억원을 제공했다는 게 정설이다. 정치권이 손을 내미는 한 외면할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재계는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고해성사론'에 공감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정치권의 대타협을 전제로 한시적인 정치자금관련 특별법을 만들어 과거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고해성사를 통해 '사면'해주고, 향후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하는 선거자금 개혁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재계도 정치권만을 탓할 게 아니라 경영의 투명성 제고 등 자정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전경련은 비자금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당한 정치자금 제공 중단을 선언했지만, 회원사들은 이를 비웃듯 정치권에 엄청난 규모의 '실탄'을 지원,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를 확대시켰다. S그룹관계자는 "기업들도 정치권만 탓할 게 아니라 지배구조의 개선, 경영의 투명성 제고, 회계제도의 개혁, 집단소송제 도입등을 통해 검은 돈 조성자체를 어렵게 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의춘기자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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