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엮음 생각의 나무 발행·2만2,000원
탈식민주의, 주체적 학문, 독창적 우리 이론…. 십 수년 전부터 국내 학계의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는 언제까지 우리는 학문 수입국이 되어야 하는가, 과연 우리 독자의 학문은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독창적 개념과 방법론으로 설명해주는 이론,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세계적 보편성까지 갖춘 우리 이론을 가져보자는 열정과 노력이 학계 한편에서 꿈틀거렸던 게 사실이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마무리한 20회 연중 기획 '우리 이론을 재검토한다'를 묶은 이 책은 그런 학계의 노력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최근의 주체적 학문 하기만이 아니라 시기를 넓혀 해방 이후 50여 년 동안 고안된 우리 이론의 면면을 보여주는 기획 자체도 참신한 데다 각각의 이론에 대한 제창자의 소회와 학계의 공과를 조합해 구성한 편집도 탄탄하다.
자문 교수진의 추천을 통해 선정한 20명의 이론가에는 조한혜정·김영민(탈식민주의 글쓰기), 백낙청(분단체제론), 최장집(한국민주주의론), 김용섭(내재적 발전론), 장회익(온생명 사상), 조동일(세계문학사), 김우창(심미적 이성), 박현채(민족경제론), 안병무(민중신학), 강만길(분단 극복 사학) 등이 포함된다.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김용옥(동양학), 김지하(생명사상), 최창조(한국의 자생풍수), 함석헌(씨알의 역사철학)씨는 물론 논쟁의 한 가운데 있는 송두율(내재적 접근)씨도 들어있다.
이론의 수준이나 개념·방법론의 구체화 정도가 각각이지만 선정된 이론은 남북 분단이나 근대화 등 우리 현실을 독창적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노력을 담은 경우가 다수이다. 서구 학문의 방법론을 의식적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나 독창적인 보편 사상으로 세계 해석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 집필한 평가자의 글이 학계의 총평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학자들은 대부분 20가지 우리 이론에 대해 그 독창성과 노력을 높이 사고 있다. '온생명의 개념은 숨쉬고 활동하고 이야기하는 우리 생명체들은 결코 자족적인 생명 단위가 아니라는 통찰을 특유의 방식으로 개념화하는 것으로 우리 학계에서 보기 드문 철학적 독창성'(장회익의 '온생명 사상') 등이 그렇다.
특히 최장집의 '한국민주주의론'에 대해서는 학계 전반이 일관되게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서구의 눈을 빌려 오되, 한국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흐름을 꿰뚫어 보고 현실가능한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최 교수 민주주의론의 핵심"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최 교수의 학문적 자장 안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지적할 정도다.
하지만 이론의 한계나 문제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분단체제론 하나로 모든 남북한 현실을 설명하겠다는 것은 이론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아닌가'(백낙청의 '분단체제론')하는 조심스러운 비판으로부터 '내적인 정합성을 상실한 기철학 체계는…마치 모순의 상황에서는 어떤 귀결도 참으로 도출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김용옥의 '동양학') 등의 혹평도 있다.
비록 주마간산일망정 우리 학문의 풍경을 일별하는데 도움이 될 만하고, 자생 학문을 꿈꾸며 절치부심하는 소장학자들이 그 고단한 과정에서 어떤 오류를 피해야 할지, 또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지 참고할 만한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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