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지위에 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성의 권리가 상당히 향상되어 더 이상 여권신장운동이 필요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그들은 여성이 사회 각 부문에 남성과 동등하게 제한없이 진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장관으로 발탁되고 여성대통령에 관한 논의도 나오고 있는 가운데 남성보다 여성이 더 쉽게 공직에 진출하거나 소위 출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또 가정에서는 여성이 경제권을 쥐고 있어 밖에서 일하는 남편들이 오히려 용돈을 타 써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였고, 아이들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주로 엄마가 결정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펴면서 그들은 더 이상의 여성운동은 남성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결국 권리의 역(逆) 불균등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권리가 괄목할 정도로 신장된 것은 틀림없다. 좋은 예로 1970년대까지도 누이는 중학교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보탰지만, 요즘은 딸 아들 구별없이 능력껏 교육시키겠다는 것이 대세이다. 여성의 진출이 공식적으로 제한된 직업영역도 없다.
그러나 어떤 인간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지, 혹은 보장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지점은 그 사람이 갈등이나 한계상황에 처했을 때 그의 요구나 바람이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는가에 있다. 예컨대 이혼시 여성의 재산권보장이나 신분에 관한 사회적 권리보장이 부실하지는 않은가, 여성이라고 해서 근로조건이 나쁘거나 승진이 제한되거나 부당 해고를 당하는 등 노동권의 침해는 없는가 등이 그것이다. 이 점에서 여성인권의 현실은 아직도 척박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여성의 권리에 관한 각종 사건, 즉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남편을 죽이고 구속된 사건, 성희롱 사건, 여성이란 이유로 부당하게 당한 정리해고 사건 등을 진행하면서 참으로 깊고 높은 벽을 느껴왔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성희롱을 인정하는 남녀의 시각차가 매우 컸으며, 여성들이 차별로 느끼는 것을 차별로 인정하지 않는 판사나 정부관료, 기업가,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설득하고 판단을 바꾸어 내기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가정폭력을 당한다고 호소하는 아내들이 30%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혼을 하는 경우 상당수의 여성들은 그동안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했던 탓에 경제적인 무능상태에 빠지게 된다. 직장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자녀양육 문제 앞에서 다른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사회활동의 욕구를 억누르고 직장을 그만두는가 하면, 사업주들은 결혼 임신 출산을 이유로 여성근로자들을 해고하거나 퇴직을 종용한다.
공적영역을 보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여성의 수는 아직도 극소수이며 여성의 경험과 의사를 반영하는 정책입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밖에도 직장내 성희롱과 각종 성폭행의 수위는 낮아지지 않고, 많은 젊은 여성들이 성매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이러한 여러 문제들의 이면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편견의 뿌리가 매우 깊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권리를 뺏기고 차별을 받는 여성들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쉼터나 성매매 여성들의 피난처, 혹은 여타 어려움을 당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감동적인 연대, 나아가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남성 연대의 동참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그 감동적인 연대와 동참으로 인해 이나마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대는 결국 편견의 높은 벽을 넘어 여성과 남성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희망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최 일 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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