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3일 한나라당에 대한 제한적 계좌추적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SK비자금 수사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이날 오전 언론에서 계좌추적 가능성을 줄곧 제기하는데 대해 "국회와 정당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기관이 아닌가. 우리는 그분들을 존중하고 의식하기 때문에 계좌추적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체적으로 언론이 너무 앞서 나간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안 부장은 이어 "정말 필요하다면 일부 사실관계 확인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계좌추적을 할 수 있겠지만 '무작때기로'(함부로), 마구잡이식으로 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역시 수사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었으나 어쨌든 계좌추적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 발언의 반향은 매우 크다. 1997년 대선 당시 불거졌던 '세풍' 사건에 이어 또 다시 한나라당에 대한 계좌추적이 이뤄진다는 것은 그 정치적 파장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일반 뇌물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사건의 경우 자금수수 사실만 인정되면 사용처 조사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달리 이번 사건에서 계좌추적을 통한 사용처 조사가 거론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돈을 직접 받은 최돈웅 의원의 혐의가 애매하다. 돈을 받아 당이나 사조직에 전달만 한 것인지, 이중 일부를 유용한 것인지 드러나지 않았다. 두가지 내용 사이에는 죄질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둘째, 계좌추적에서 공범관계가 드러날 수 있다. 100억원의 이동과 집행 경로가 드러난다면 이 과정에 개입한 관계자는 자연스레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같은 기술적 측면보다 이번 사건이 개인 차원의 뇌물 사건이 아니라 제1 야당의 대선자금과 관련된 문제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는 점이 보다 근본적인 이유다.
제한적 계좌추적의 범위는 최 의원의 진술 및 이후 한나라당의 반응에 달려있다. 최 의원은 당쪽에 넘긴 돈의 액수와 전달 받은 당사자를 지목할 것으로 보인다. 지목 받은 당사자가 최 의원의 진술에 대해 순순히 동의하고 돈의 사용처를 밝힌다면 계좌추적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 의원 진술을 상대방이 전면 부인하거나 돈의 액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양측 주장의 진위를 검증하기 위해선 최 의원 개인 및 지구당 관련계좌 추적을 통해 개인적인 유용 여부를 조사해야 하고 한나라당 관련계좌에 돈이 얼마나 유입됐는지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계좌추적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액 현금으로 건네진 돈을 다시 공식계좌에 입금시켰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계좌추적을 하고도 별다른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면 부담은 검찰에게 돌아간다. 검찰로선 슬쩍 내비치긴 했으되 무턱대고 꺼내기는 쉽지않은 카드라는 것이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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