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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송두율씨의 경우 (II)

입력
2003.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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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이상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송두율씨 문제가 법정으로 옮겨지게 됐다. 검찰이 송씨를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사법처리 수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송씨는 22일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한 법원의 실질심사를 거쳐 구속수감 됐다. 대통령의 '포용'호소와, 사건의 고비마다 주무장관의 '물타기'시도까지 물리친 검찰의 독자적 선택이 그래서 돋보인다.본란(9월26일자)은 송씨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데 있어 '경계인'이라는 수사(修辭)로, 혹은 독일국적이라는 이유로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 현대사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송씨는 우리 체제가 안아야 할 대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물 건너 간 느낌이다.

송씨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했던 측과, 송씨의 자세를 못마땅해 하는 측의 반응이 크게 엇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문제가 다시 보혁갈등으로 증폭되는 사태만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송씨가 뭔데 한 달이 넘게 온 사회가 들끓어야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가 없으면 우리 사회과학계에 무슨 큰 구멍이라도 뚫릴 듯 하는 호들갑 역시 터무니없다.

37년 만에 돌아온 독일인 송씨에겐 물어봐야 할 과거가 있고, 따져봐야 할 의문점이 많다. 우선 그가 북한 노동당 후보위원 김철수냐이다. 송씨는 94년 김일성 장례식 때 김철수로 초청 받아 참석했다. 장례위원 김철수는 분명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다. 그러나 후보위원 대접만 받았을 뿐 임명되거나, 활동은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마치 남의 소를 훔친 도둑이 "길가에 있는 새끼줄을 끌고 왔더니 소가 딸려왔더라"고 하는 변명과 다르지 않다.

검찰은 그의 자백을 통해 김철수 임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송씨는 시종 부인했다. 수사과정에서 그의 자세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여러 의혹에 대해 고해(告解)보다는 당국이 들이 댄 물증에 따라 마지못해 시인했다고 한다. 보안법 무력화를 위해 북한이 기획입국 시킨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만하다. 정말 고국에서 살고 싶은 사람의 자세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절망해 73년 노동당에 입당했다고 했다. 시대적으로는 베트남이 적화될 무렵이자, 공산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때다. 이제 공산주의의 패퇴로 상황은 역전됐다. 생계를 위해 U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된 것이다. 일부에서 그를 '생계형 기회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의 이념이나 사상구조에도 모순점이 많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랄 수 있는 내재적 접근법이란 김일성 체제를 김일성 입장에서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신체제도 박정희 입장에서 보지 못할 까닭이 없다. 73년 유신반대를 명분 삼은 그의 변신이 실은 북한에 포섭된 변절이었음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또 그가 말한 '경계인'이란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입장을 일컫는다. 그러나 그는 최근 노동당 탈당의 변으로 '균형감 있는 경계인으로 살기 위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경계인'이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지식인다운 진솔함이나 학자다운 순수함을 아쉬워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다.

송씨 사건에 대통령까지 나선 점은 부적절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송씨 사건을 언급했다. 원고에도 없는 즉석발언을 통해서다. 요지는 송씨 문제가 분단시대 극단적인 대결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법과 상황에서 거론되고 있다며 '포용'을 호소했다.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게와 값이 다르다. 이 말을 국회의원이 했다면 남북화해시대에 일방적 법 집행을 만류한 것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법질서 수호의 최후 보루여야 할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면 문제다. 보안법에 문제가 있고 또 손질이 불가피한 것쯤은 기자도 안다. 그러나 엄연한 실정법을 무시한다면 누가 누구에게 준법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노 진 환 주필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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