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구조안전진단 통과, 재건축 추진위원회 일동'. 서울 강남의 저밀도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날 때 흔히 볼 수 있는 플래카드 문구다.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근본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축하하는 나라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평수만 늘려진다면, 그 동안의 삶의 흔적이야 허공으로 사라지든 말든 자신들이 살던 집을 20년만 넘으면 때려 부수며 환호작약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국민성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참여정부가 수도권 과밀화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돈 되는 것은 역시 부동산이라는 국민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이에 편승한 정부의 토지정책과 개발업자와 건설업체의 부추김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신 행정수도 건설은 또다시 20, 30년 만에 다 때려 부수는 일을 반복하고 경축하는 도시가 충청권 어딘가에 하나 더 생긴다는 의미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정부는 신 행정수도 기본 구상을 용역 발주하고 토지개발공사로 하여금 땅을 수용하여 부지를 조성하고 도시 인프라를 구축한 다음 관공서와 주거시설을 지으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20세기 도시 형성과정에서 잘못된 모든 분야를 재정립하고 생명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와 건축 전문가뿐 아니라 역사학자 사회학자 교육학자 심리학자 산업디자이너와 물리학자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사회적 담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담론은 인간의 삶과 도시에 대한 근원적 물음부터 행정수도 이전의 필요성과 시기, 국민적 공감대를 위한 공론화, 새 시스템과 절차 등 모든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
필자는 최근 일본 도쿄도 임해부 도심계획(동풍2000)과 신행정수도 계획에 초대 건축가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그들이 신 수도이전과 구(舊) 수도 개조계획을 같이 입안하고, 세계 각국의 지혜를 동원하려는 개방된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글라데시가 1972년 파키스탄으로부터 피어린 독립 전쟁을 치르고 수도 다카에 행정부와 입법부를 건립할 당시 세계 최고의 건축가를 초빙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루이스 칸은 유대계 미국인이었지만 그와 같은 혜안을 지닌 신생 방글라데시의 정부 지도자들의 부탁을 받고 세계가 선망하는 최고의 국회의사당을 지었다. 프랑스도 미테랑 대통령 시절 루브르 박물관 개조를 중국계 미국인 이오 밍 페이에게 맡겨 오늘날의 아름다운 유리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프랑스라고 해서 그네들의 자존심이 없었겠는가.
왜 우리는 집 하나 설계해 본 적 없는, 용역업자로 가장한 로비스트들에게 새로운 수도를 맡겨야 하는가. 왜 아마추어들이 그어 놓은 용도별 지역구분과 조감도 하나만으로 스산하기 짝이 없는 도시를 만드는가.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다음과 같은 국민적 소망이 필요하다. '왜 우리는 스페인의 빌바오처럼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는, 스톡홀름의 우드랜드와 같은 사색하기 좋은 공원묘지가 있는, 저층집합주택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헬싱키와 같은 삶의 질이 충만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되는가. 왜 우리는 그렇게 세계인 모두가 찾고 싶은 도시를 만들면 안 되는가.'
이번에야 말로 모든 이의 지혜를 모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도시를 만들어 보자.
김 영 섭 행정개혁 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