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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정액제/포괄수가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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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비 정액제/포괄수가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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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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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의 후퇴인가, 우회인가.'진료비정액제(포괄수가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의료단체는 포괄수가제에 대해 진료의 차별성을 무시한 사회주의적 의료정책이라 반발하고 있고 시민단체들은 오히려 의사들의 무분별한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 반드시 전면실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20일 "포괄수가제를 의료기관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대상질환을 크게 확대하겠다"고 강제실시를 철회하자 시민단체들은 무소신과 일관성없는 정책수행이라면서 복지부장관 퇴진운동 검토 성명을 내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포괄수가제가 한쪽에서는 반자본주의적 의료정책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현정부의 보건의료개혁 바로미터로 보는 상반된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혼란만 부추긴 전면실시

의료계 내부적으로 포괄수가제는 '독 발린 사탕'이라 불릴 만큼 불신의 골이 깊은 가운데 복지부가 처음 강제실시 방침을 밝힌 이후 '결사반대'의 강경기류가 지배적이었다.

대한의사협회는 "포괄수가제가 의료비 절감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복지부의 포괄수가제 시범사업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다"며 "질좋은 재료나 새로운 기술의 사용을 억제함으로써 의료의 질을 하향평준화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참여연대나 경실련 등 시민단체나 노동계는 "기존의 진료비지불제도는 의료서비스 제공량을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료공급자의 경제적 이윤동기로 인해 불필요한 환자부담과 건강보험재정 낭비를 초래했다"며 "더욱이 의료기관이 청구한 진료비를 조정, 삭감하는 과정에서 보험자와 의료계간에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의료계 불만과 시민단체의 전면실시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복지부는 11월 시행을 불과 열흘 남기고 뚜렷한 명분 없이 '민간의료기관은 임의적용'으로 방향을 틀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의료계압력에 굴복했다는 시민단체들의 원색적인 반발과 의료정책에 대한 국민불신을 자초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진료비정액제 확대도 논란 불씨

복지부는 의료기관 강제실시를 철회하는 대신 대상질환을 현재 7개에서 2005년부터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김 장관은 이와 관련, 국감에서 10∼20개로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의료기관이 포괄수가제를 선택할 수 있게 할 경우 오히려 의료비가 늘어날 수 있고 의료의 질관리도 이루어질 수 없다면서 차라리 폐지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건강세상 네트워크 관계자는 "평균진료비가 낮은 의료기관은 포괄수가제를 받아들일 것이고 진료비수준이 높은 의료기관은 계속 행위별 진료비를 택할 것이기 때문에 의료비 지출은 오히려 더 늘어난다"며 "선택적용 하에서 대상질환이 확대되면 오히려 이러한 경향은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사협회 역시 "포괄수가제 대상질환 확대방침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사실 복지부가 포괄수가제를 추진하는 배경은 기본적으로 총액예산제(병원별로 의료비 총액을 미리 지불하는 제도)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 포괄수가제가 개별 질환에 대한 진료비 통제라면 총액예산제는 질병전체에 대한 진료비 통제를 의미한다.

김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궁극적으로는 총액예산제로 가야 한다"고 말해 포괄수가제가 총액예산제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강제실시 방침이 의료계 반발에 밀려 철회된 뒤 시민단체마저 등을 돌리는 형국이어서 복지부의 보건개혁추진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러나 복지부 관계자는 "행위별 진료비나 포괄수가제가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강제실시 철회가 개혁을 포기했다거나 의료계에 굴복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포괄수가제를 채택한 의료기관의 진료비 매출은 오르는 반면 행위별 수가를 채택한 병원의 매출은 떨어지는 등 포괄수가제의 효과가 두드러져 의료기관 참여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필요한 마찰은 할 수 없이 피했지만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 의료비 절감 효과 있나

진료비 정액제(포괄수가제)는 의료비 절감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싸구려 진료 우려는 없는 것일까.

미국은 1983년 노인과 장애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메디케어(Medi Care)에 처음으로 포괄수가제를 도입했다. 포괄수가가 도입되기 전 10년간 의료기관의 건당 진료비는 연평균 11.9% 증가했으나, 포괄수가제 도입 이후 15년간 건당 입원진료비 연평균 증가율은 6.4%로 떨어졌다. 총 입원진료비 증가율도 18%에서 6.3%로 낮아지는 효과를 보았다. 포괄수가가 적용된 입원진료의 경우에 의료비 절감효과가 확실히 나타난 셈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일부 질환에 대한 포괄수가제 시범실시가 이루어진 2000년과 2001년 포괄수가제를 적용한 의료기관의 진료비는 행위별 진료비를 채택한 의료기관에 비해 각각 23.8%, 12.2% 높았다. 반면 환자 본인부담금은 20%정도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의료기관의 포괄수가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행위별 진료비보다 진료비를 33∼14% 높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외래를 포함한 총 진료비 증가율은 포괄수가제 도입 전후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입원진료비 증가는 확실히 줄어든 반면 오히려 외래진료쪽에서 증가세가 뚜렷했기 때문. 특히 포괄수가가 적용되지 않는 통원수술이 60∼70%나 폭증했다. 포괄수가를 회피하기 위한 의료기관의 의도적 통원수술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포괄수가제의 총진료비 절감효과가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의료기관의 입원기간이나 의료서비스 제공량은 각각 5.7%, 14% 줄어들었다. 이 같은 입원기간과 의료서비스 감소가 의료의 질 저하로 몰아붙일 수는 없으나 가능성은 충분하다. 특히 포괄수가제 적용 의료기관의 경우 퇴원 후 외래방문 횟수, 입원 전 검사횟수가 소폭 늘어나는 등 포괄수가가 적용되는 입원진료에서 담당하던 부분이 행위별 진료비가 적용되는 외래진료로 옮겨지는 왜곡현상을 보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입원기간을 피해 검사나 항생제 사용이 이루어지는 부분은 포괄수가제가 가진 문제점"이라면서 "다만 그 수치가 총 진료비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고 또 의료기관의 경쟁이 있기 때문에 심각한 질 저하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황기자

■美, 노인·장애인 진료비에 첫도입

현재 진료비 지불은 개별 진료행위와 서비스 하나하나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별 진료비 제도다.

반면 포괄수가제는 진료내용에 상관없이 정해진 진료비만 내는 제도로 미국 예일대에서 입원환자 분류체계로 개발한 것을 1983년 미 정부가 노인과 장애자 대상인 메디케어의 입원진료비 지불방식으로 처음 사용했다.

예컨대 맹장수술을 하는 경우 검사나 수술, 의료기기의 사용정도가 달라 병원마다 실제 총진료비는 천차만별. 의료서비스의 양에 따라 60만∼200만원까지 편차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포괄수가제를 채택한 의료기관은 맹장수술 1건에 대해 평균 100만원의 진료비를 받는다. 환자입장에서는 보험적용을 받지 않는 약품이나 영양제, 주사바늘 등 본인이 모두 부담해야 하지만 포괄수가에서는 전체 의료비중 10∼20%를 차지하는 이 비용도 따로 들지 않는다.

행위별 진료비에서는 의료기관이 의료서비스 양을 늘리려는 욕구를 가지게 되지만 포괄수가제에서는 오히려 의료서비스를 줄이려는 욕구를 가지게 돼 의료의 질저하를 막는 게 관건이다.

특히 의료기관이 포괄수가를 하면서 행위별 진료 부분을 늘리려고 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아 최선의 진료비제도라 보기는 어렵다.

선진국중 국민의료비가 1위인 미국에서 포괄수가제가 먼저 시작된 것도 행위별 진료비제 하에서 늘어나는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외래진료부문까지 포괄수가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호주는 93년 빅토리아주에서 시행되다 2000년부터 모든 지역의 공공기관에 적용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대만이 97년부터 10개 질병군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50개 질병군에 강제시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과 일본 싱가포르 등이 시행하고 있거나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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