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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30> 농산물가공의 직영과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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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30> 농산물가공의 직영과 실패

입력
2003.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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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식품은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80년대 후반부터는 차츰 안정단계에 들어섰다. 유기농 채소에다 두부·콩나물 등의 1차 가공식품과 야채효소 등의 건강보조식품 및 생수까지 생산해 내면서 종합식품그룹으로서 토대를 닦아가는 시기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회사 발전이 큰 아들 혜영이로 하여금 회사에서 손을 떼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다. 회사경영을 남승우 사장과 큰 아들 혜영이가 공동으로 할 때다.풀무원식품이 다양한 제품군으로 생산을 확장해가면서 매출이 늘게 되자 당국에서는 풀무원식품에서 나온 돈이 혜영이를 통해 야당으로 흘러들어가 정치자금으로 사용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정보요원들이 수시로 회사를 찾아와 이것저것 들치며 압박을 가해왔다. '압박과 감시의 손길은 자칫 성장일로의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혜영이는 결국 회사경영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뗐다. 회사와 인연을 끊은 그날로 혜영이는 정치에 뛰어들었고 경기 부천 지역구에 한겨레민주당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다음 번 선거에서 민주당으로 당선됐다. 풀무원이 초기의 고전에서 벗어나 건강식품 바람을 타고 괄목할 성장을 하던 시기의 그림자라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뼈아픈 실패의 시작이었다.

풀무원식품의 성장을 보면서 나는 큰 기술이 필요치 않은 식품가공에 도전장을 던졌다. 한삶회의 운영을 더 발전, 확대하기 위해서는 수익사업이 필요하다는 생각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삶회재단 밑에 한삶식품이라는 사업체를 따로 두고 야채효소 같은 간단한 가공식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약재로 쓰이는 어성초를 이용해 차도 만들었고 소화효소에도 도전했다. 시작단계였기 때문에 소량으로 생산해 정농생협과 개별 식품회사를 상대로 판매에 나섰다. 그러나 유통량이 많지 않아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정부에서 농촌의 영농조합법인에 대한 막대한 지원정책을 들고나왔다. 어느 정도 농산물가공에 자신이 붙은 상태에서 자금까지 마련되자 다들 절반 성공이나 거둔 것처럼 생각했다. 도전품목은 현미식혜로 정했다. 1990년대 초반 들어 큰 식품회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었던 게 식혜였고 당시 건강붐을 타고 각광을 받던 게 현미였다. 두 가지를 결합한 아이디어는 사실상 우리가 처음 낸 것이었기 때문에 확신을 갖게됐다.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지원금을 받아 농장 한 켠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설비를 들였다. 착착 일이 진행되고 첫 생산품이 나왔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때가 도와주지 않았다. 시제품이 나올 즈음이 바로 국제통화기금(IMF)사태의 혹한이 닥친 1997년이었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고 재고정리에 나섰다. 식혜도 마찬가지로 대기업에서 덤핑으로 제품을 시장에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모 식품회사에서 원가보다 20원이나 낮은 가격에 덤핑을 했고 우리가 만든 현미식혜는 시장의 빛도 보지 못하고 전량 폐기처분됐다. 막대한 투자비는 빚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삶회의 재무책임을 맡은 사람이 어음사기에 말려들어 큰 돈을 잃고 말았다.

결국 그 컸던 농장은 IMF사태 직후 정부 지원금 등의 부채상환용으로 경매에 부쳐져 처분됐다. 아직까지 한삶회 법인이 갚지 못한 부채가 남아있을 정도로 실패는 깊은 골을 남기고 말았다.

풀무원공동체도 그때부터 사실상 해산에 들어가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지금은 몇몇만 남아 얼마 안 되는 케일농사를 지으며 나와 함께 하고있다. 사업으로 치면 큰 실패였지만 내가 일궈온 40여년 공동체농사는 지금도 농촌곳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더구나 공동체 실험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공동체가 물질을 나누는 공동체였다면 앞으로의 공동체는 평화를 나누는 그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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