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4당 대표와의 연쇄 회동을 앞두고 23일 싱가포르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힌 정치구상은 상황진전에 따라선 엄청난 격변을 가져올 요소를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이 국내정치와 관련해 언급한 내용은 4당 대표와의 대화 때 '재신임 국민투표 시기조정'과 '대선자금 논의'를 하겠다는 것을 두 축으로 한다.노 대통령이 "한번 말을 꺼낸 만큼 재신임 국민투표 약속은 지켜야 하되 다만 그 실시시기를 바꿀 수 있다"고 한 것은 말 그대로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의미다. 당초 제시했던 '12월15일 전후'는 정기국회 일정 등을 감안해 최대한 앞당겨 놓은 것이다. 늦춘다면 올해를 넘긴다는 얘기이고, 이 경우 내년 4월 총선 일정 등과 관련해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긴다. 총선과 함께 국민투표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마무리돼야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사안은 시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깊이 연결돼 있다. 노 대통령은 이미 7월에 대선자금과 관련, "여야가 모두 고해성사를 하고 국민이 용인하면 대사면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검찰 수사에 따른 처벌을 받은 뒤 정치제도 개혁에 나서자"는 제안을 했다.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 때문에 노 대통령이 이날 간담회에서 대선자금 문제 등과 관련해 "해결되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이 제안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투표와 대선자금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맞물릴지 현재로선 확실치 않으나 국민투표에 정치자금과 관련된 대사면 여부를 연계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여기에는 정치권의 합의, 이미 처벌 받은 사건과의 형평성,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의 괴리 등 장애물이 놓여있어 논의 자체가 그렇게 쉽지 만은 않아 보인다.
또한 정치권과의 합의에 의한 재신임 국민투표의 연기 가능성이 실현될 경우, 노 대통령이 국민투표 이후로 미뤄놓았던 내각 및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인적 쇄신 시기가 당장 영향을 받게 된다.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열린우리당 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시기가 오히려 앞당겨져 전격적으로 단행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이미 사표를 제출한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뿐 아니라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재인 민정, 유인태 정무수석 등의 거취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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