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태고종의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22일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열린 제27회 태고종 합동수계법회에서는 4주간의 행자교육을 마친 197명의 신참 스님들이 태고종 승려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다른 불교 종단의 수계식과 달리 출가를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빠 저기 있네." 한 아이가 대웅전 앞에서 수계식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신참 스님들의 한 가운데를 가리키며 엄마에게 말했다. 가정을 갖고 있는 대처(帶妻)승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태고종 특유의 모습이었다.
이번에 정식 승려가 된 태고종 스님들 가운데는 대를 이어 출가한 2,3세 스님들이 많다. 종단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스님 자녀들 가운데 출가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다"며 "이번에 행자 교육을 마친 사람들 가운데 30% 정도가 스님 자녀들"이라고 밝혔다. 전남 종무원장 윤법천 스님의 아들 윤지홍(38) 스님, 호법위원회 부위원장 김월운 스님의 아들로 태고종 총무원 직원으로 일하던 김법전(30) 스님 등 종단 직책을 맡았던 스님 자녀들도 이번 수계법회를 거쳤다.
배경은 의외로 간단하다. 태고종은 1950·60년대 한국 불교계를 달구었던 비구―대처 갈등의 결과물이다. 그런 갈등을 거친 대처승들은 70년 5월 태고종 설립과 함께 전국 각지에 개인 사찰을 세웠다. 그 1세대 스님들이 대부분 60·70대여서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그 자녀들이 대를 잇기 위해 승려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결혼한 대처승은 중도 아니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결혼 사실을 감추어야 했던 과거와 달리 부인과 함께 포교를 하고, 자녀를 법회에 참석시키는 등 태고종 내의 분위기가 뚜렷이 바뀐 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 7월 태고종은 개신교의 전도사처럼 포교활동을 전담하는 '전법사'를 처음 배출했는데 이들 가운데 스님들의 부인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결혼한 사실을 떳떳이 밝히고 신도들도 이를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여서 자연스럽게 스님 자녀들의 출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30∼40년 간 가꾸어 온 개인사찰을 남에게 내주기 싫어서 자녀의 출가를 재촉하는 스님들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태고종 사찰 2,500여 개 가운데 종단이 관리하는 공유사찰은 20%에 불과하며 80%의 사찰이 상속이 가능한 개인 사찰이다. 현재 태고종 스님은 5,000여명으로 이 중 비구니 500여명을 제외한 남자 스님 가운데 3,400여명 정도가 결혼한 대처승이고 1,000여명이 독신생활을 하는 비구승으로 추산되고 있다. 스님 2,3명에 1명이 개인사찰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태고종 종립 동방불교대학 교학처장 법현 스님은 "태고종 스님들이 '정통종단'이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며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사찰의 재산 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점 등도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태고종 관계자들은 주지스님이 몇 년 마다 바뀌는 다른 종단과 달리 대를 이어 한 곳에서 절을 가꿈으로써 신도들이 스님을 신뢰하고, 지역 사회와 친밀도가 높아져 포교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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