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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막내야, 어머니와 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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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보내는 편지/"막내야, 어머니와 잘 있지"

입력
2003.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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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얼마 전 TV를 통해 남쪽의 이산 가족들이 북쪽의 형제 자매들과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한국전쟁의 와중에 한 많은 생을 마감하신 어머님 생각이 간절했습니다.벌써 50년이 더 지났군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한국전쟁이 터졌지요. 수원 근처의 어느 시골에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공산 치하에서 끔찍한 시간을 보냈지요. 1·4 후퇴 때에 우리 가족은 지붕도 없는 화물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철도원이었던 아버님 덕분에 그나마 얻어 탄 열차였습니다. 세살이던 막내는 조만간 닥칠 자기 운명을 알기라도 했는지 그렇게 서럽게 눈물을 흘리더군요.

대전역 근처의 어느 창고에서 우리 가족은 한동안 연명했습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그래도 지낼 만 했었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역무원이라며 강제로 노역에 끌려가면서 어머니와 우리 5남매는 허허벌판에 남겨졌습니다. 그 때 막내가 엄동설한에 홍역으로 시름시름 하더니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막내 시신을 꽁꽁 언 땅에 묻었지요.

그 해 겨울은 숱한 피난민의 목숨을 빼앗고 나서야 봄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식량이 떨어져 가자 어머니는 "죽더라도 고향에 가서 죽자"면서 우리 4남매를 이끌고 무작정 북쪽을 향해 걸었지요. "서울도 아직 수복이 안 돼 위험하다"며 말리는 국군을 피해 험한 길만 택해서 걷고 또 걸었지요. 어머니는 자존심을 버리고 구걸을 해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비행기가 우리 바로 앞에 폭탄을 퍼부었고 철길을 걷다가 기차가 우리 가족을 덮쳤어도 우리 가족은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습니다.

그런데 강하던 어머니가 한국전쟁이 끝나자 너무나 허망하게 세상을 등지더군요. 긴장이 풀려서였을까요. "어지럽다"며 자리에 눕던 어머니가 훌쩍 막내의 뒤를 이었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나요. 어머니, 코흘리개였던 제가 벌써 환갑이 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여기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막내야, 어머니 잘 모시고 있지?

/신해철·서울 서초구 방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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