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인 KBS가 다른 기업체의 신입사원 채용에 나선다? 19일 KBS 라디오 공개홀에서는 100명의 LG 전자 입사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한 아주 특별한 면접이 있었다. 면접 참가자들은 토익(TOEIC) 점수, 학교 성적, 자기소개서 등을 반영된 서류전형에서 7대 1의 경쟁을 뚫고 올라온 정예들이었다. 하지만 헤드헌터, 대학 교수, LG전자 임원 등이 면접관으로 참가한 면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0명에 불과했다. 면접에 통과했다고 해서 10명의 생존자가 바로 LG 전자에 입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이날 면접은 KBS 2TV의 '열린 취업, 꿈의 피라미드' 프로그램에 참여해 취업 서바이벌 게임을 벌일 10명의 참가자를 뽑기 위한 것이었다. 선발된 참가자 10명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LG DDM 사업본부에서 5박 6일간 합숙하며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 절박한 게임에서 승리한 최후의 1명만 LG 전자 입사와 해외연수의 행운을 거머쥐게 된다. '열린 취업, 꿈의 피라미드'는 KBS 2TV는 가을 개편에서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후속으로 11월9일부터 방송하는 '일요일은 101%' 프로그램의 한 코너다. '열린 취업, 꿈의 피라미드'는 기업체와 연계해 실업자를 취업시켜 주는 코너로 참가자들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취업 정보 등과 함께 보여줄 예정이다. KBS 홈페이지에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공고가 나간 지 1주일 만에 7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지원자 가운데는 명문대 출신은 물론 해외파와 석사 학위 소지자까지 포함돼 있고 전직 대기업 홍보 담당자였던 40대 지원자와 61세 지원자도 있어 극심한 취업난을 반영했다. 프로그램을 맡은 윤현준(33) PD는 "구직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취업 전략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오락 형태로 전달하고자 했다"고 제작의도를 설명했다.
TV 브라운관과 영화 스크린은 세상의 모습을 생생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이를 증명하듯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2003년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TV 프로그램과 영화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취업 알선 프로그램 외에도 불황시대에 맞게 어떻게 현명하게 소비하고 또 절약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도 나오고 있다. 15일 MBC에서 방송한 파일럿 프로그램(시험방송) '행복주식회사'는 어려워진 경제상황에 맞춘 신용 불량자 예방 프로그램이다. 소득에 비해 늘 지출이 많은 생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이 프로에 출연한 여대생 박세노(23)씨는 월 45만원의 용돈을 받고 있지만 항상 돈이 부족하다. 끊임 없이 옷이나 신발을 사들이느라 친구에게 신용카드를 빌려 모자란 용돈을 채우는 식이다. 제작진이 내린 처방은 '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텨 보라'는 것. 하루 용돈보다도 적은 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티려는 세노씨의 일상은 눈물겹다. 점심 값을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갔지만 친구들은 "냄새 난다"며 구박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지쳐 버스 안에서 잠 드는 바람에 정류장을 놓쳐 6㎞나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학교 인근 친구 자취방을 찾아가 잠을 청하거나 휴대폰 요금이 아까워 친구한테 전화 오기만 기다린다. 결국 그가 일주일 동안 쓴 돈의 내역은 교통비 8,790원 교회헌금 100원, 휴대폰 요금 1,051원 등 총 9,941원. 박세노씨는 프로그램에 출연 후 "계획을 세워 지출하는 게 몸에 익었다"고 말했다. 11월8일부터 방영되는 KBS2 채널의 '황금의 시간'은 합리적 소비 방법을 소개하는 신개념 경제학습 프로그램이다. 남희석이 MC를 맡은 이 프로그램에는 전국의 짠돌이들을 집중 조명한 '자린고비열전', 대한민국 최고로 땅값이 비싼 곳을 찾아가 보는 퀴즈, 또 일반인이나 연예인들의 소비 형태를 추적해 보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분석해 보는 코너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백수'와 '백조'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출현도 불황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8월24일 종영된 SBS 드라마 '백수탈출'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가 모두 백수인 집안의 좌충우돌 취업 성공기를 다뤘다. 영화 '위대한 유산'에서 임창정은 비디오 연체료에 어쩔 줄 몰라 하고 김선아는 언니 옷 몰래 훔쳐 입고 면접에 나가는 등 무직자의 생활을 속속들이 보여 준다. 이 영화가 관심을 끄는 것은 누구나 백수, 백조가 될 가능성이 큰 시대이기 때문이다. 올 한해 동안 아르바이트로 출발해 정식사원이 된 '옥탑방 고양'이의 '정은'처럼 보다 현실적 모습을 보여준 드라마 주인공들이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 불황의 여파는 정통 멜로 드라마의 복귀로도 이어지고 있다. 방송 관계자들은 "얇아진 주머니 때문에 우울해지면 시청자들을 코끝이 찡하게 울려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정통 멜로 드라마가 유행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태양의 남쪽', '완전한 사랑' 등 근래 보기 드물었던 '낡은' 정통 드라마가 전파를 타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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