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은 금년 중 양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해 2005 년까지 마치기로 합의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주력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일 협상력 제고를 위한 준비기간 등을 고려할 때 협상시한을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종료시기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협상시한을 더 이상 늦출 경우 시장통합의 실익을 놓치고 국제미아가 된다는 점도 깊이 인식해야 한다.최근 일본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세계 주요 거점에서 FTA선공에 나선 가운데 아시아 주변국에까지 손을 뻗쳐 아시아의 앞마당에서 조차 경쟁력을 상실하는 게 아닌가 걱정해왔다. 일본으로서는 한국과의 FTA가 아시아 시장에서 자국의 정치·경제적 위상 확보와 자금―기술의 환류(還流) 메카니즘 구축을 위한 장기포석의 일환이다.
물론 한국으로서도 일본과의 FTA는 중차대한 과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한 '연습게임' 상대로 칠레와 FTA체결을 추진했으나 지역표밭을 의식한 국회가 비준을 미뤄 대외신인도 마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민관 총력체제로 임하고 있는 일본과 철저한 준비 없이 협상을 서둘렀다가는 낭패를 당할 게 뻔하다. 양국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무수한 사안을 두고 밀고 당기는 각론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해득실을 막연하게 저울질 하던 총론적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이다.
한국은 우선 관세·비관세 철폐 문제는 물론 원산지규정, 긴급수입제한 조치, 투자 등에 관한 규범과 정보통신, 환경, 경쟁정책, 지적재산권 문제 등에 관한 구체적 사안들을 심도 있게 다뤄야 한다. 이를 위해 대일 협상전면에 협상 경험이 풍부한 대일 전문가들을 포진하고 분야별 전문가 그룹이 이를 배후에서 지원해야 한다. 특히 관련업계가 지금처럼 강 건너 불 보듯 팔짱을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한·일FTA가 이루어지면 자동차, 기계류, 전자 조립품과 고급부품 및 소재의 수입증가로 관련업계의 일대 재편은 물론 하청업체들의 도산사태가 벌어질 게 뻔하다. 대신 일부 업종, 다시 말해 일제 부품과 소재를 쓰는 가공 조립업과 정보기술(IT) 관련기기 및 소프트웨어 업종이 반사적 이득을 보겠지만 이 정도의 충격 흡수로는 대일적자 증가를 막을 수 없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중저가품을 팔아 일본의 고가품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일본의 대한(對韓) 직접투자도 별로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FTA의 단기적 득실에 너무 연연해서도 안 된다. 양국기업간 전략적 제휴를 통한 경쟁업종의 구조조정과 상호 공급체제를 조속히 구축하려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통한 무역· 투자의 확대균형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응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일본은 지금 같은 폐쇄적 기업 거래관행과 엔화절하의 유혹을 뿌리치는 과단성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대일 적자와 과거사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민간기업에 대한 역할은 제한되어 있고, 우리의 비관세 조치는 합리적이며, 한국의 대일적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되뇌는 일본의 태도는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한다. 그런 식의 생산자 주도 경제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일 양국의 통합시장 규모는 제약될 수 밖에 없고, 중국 등 역외국을 끌어안아 아시아 네트워크 경제이익을 취하는 데도 역부족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 1년의 작업 끝에 산·학·관 공동연구회가 내놓은 양국 규제개혁 프로그램과 연계한 비관세조치 완화·철폐 3개년 계획에 관한 협정문안에 조속히 합의해야 한다. 협상초기의 신뢰관계 구축 여부가 한·일FTA의 성패를 좌우할 중대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김 도 형 계명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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