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풀인 줄 알았죠? 패랭이 백리향 비비추… 예쁜 이름이 다 있어요." 5학년 미술시간. 답답한 교실을 벗어난 아이들은 학교 옥상에서 담임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이파리 하나라도 놓칠 새라 도란도란 정밀화를 그리고 있다. 옆에서는 가을 햇살에 발갛게 볼이 익은 아이들이 길게 뻗은 산책로와 징검다리에서 가을바람을 쫓아 뜀박질을 한다.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숨막히게 들어찬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1동 중동신도시에 웅크린 5층짜리 신도초등학교 450평 옥상엔 독특하고 아담한 공원이 있다.
파란 하늘에 더 가까이 있다는 의미의 '하늘공원'은 2년 동안의 꽃 단장을 마치고 15일 아이들을 맞았다.
학교 옥상하면 으레 물탱크와 부러진 책걸상, 학교 폐자재가 쌓여있는 외부창고이자 안전 때문에 아이들에겐 철문이 굳게 잠긴 금단의 구역이었다.
그 버려진 공간에 나무와 꽃을 심고 정자를 세우고 물길을 낸 건 학부모와 학생, 교사가 한데 어울려 흘린 땀방울이다.
지난해 초 교사와 학부모 모임에서 "(아이들이) 자연을 접할 수 있게 옥상을 꾸미면 어때요?"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만 해도 "돈이 많이 들 텐데…." "지상보다 관리가 힘들어" 하곤 저마다 고개를 내저었다.
모두들 반신반의하던 꿈을 이루기 위해 허지자(62·여) 교장이 나섰다. 허 교장은 수소문 끝에 부천시가 '푸른 부천 가꾸기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 당장 달려갔고 시도 "삭막한 도심에 기발한 숲 하나 가꿔보자"라며 선뜻 응해줬다.
돈 문제는 시와 부천교육청이 공동으로 1억 8,000여 만원을 지원하고 학부모와 주민단체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관공서나 일반 기업의 옥상정원을 견학했고 방수처리, 안전을 위한 울타리 보강 등 꼼꼼한 구조안전진단 및 설계용역을 마친 지난해 6월 첫 삽을 떴다.
"내 아이 학교 공사를 팔짱 끼고 볼 수만 없다"며 엄마들도 나섰다. 원미구에서 보내준 금낭화 매발톱 등 야생화 25종 9,000포기를 공원 야생화단지에 심고 5층에서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 벽면엔 푸른 숲 벽화를 그렸다. 야생화 팻말도 달고 녹슨 철문이 버티고 있었을 자리엔 스티로폼 나비와 잠자리를 매달았다.
교사들은 전시관을 꾸밀 파일자료와 비디오테이프 등 학습자료를 만들고 배짱이 여치 방아깨비 등 곤충 표본을 구해왔다. 학생들은 틈틈이 올라와 수생식물 심는 작업을 도왔다.
이런 노력 끝에 "못 보던 꽃도 보고 바람도 좋다"는 5학년 수빈(11·여)이와 "풍경이 좋은 하늘공원이 여자친구"라는 3학년 우연(9)이의 자랑에 걸맞은 하늘공원이 완성됐다.
하늘공원은 아기자기하다. 좁은 공간이지만 전시실, 음악감상 정자, 표현광장, 이야기 나눔터, 산책로, 꿈의 다리(징검다리), 연못, 물레방아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야생화 사진, 곤충 표본과 식물 세포조직을 관찰하는 현미경 등을 갖춘 전시실을 나서면 아기공룡 둘리 캐릭터가 아이들을 맞는다.
공원 안엔 우산나물 기린초 패랭이꽃 비비추 등 야생화단지와 조팝나무 등 10종의 나무, 창포 등 습지식물이 잘 꾸며져 있다.
소금쟁이 물방개 등이 노니는 연못 위 징검다리 너머에 있는 꼬마 물레방아도 인기다. 기둥마다 동요, 교과서 수록곡 등이 담긴 CD 플레이어가 있는 음악감상 정자는 아이들의 편안한 쉼터다.
은은한 불빛을 선사하는 조명등과 서치라이트는 주변 아파트 주민들에게 야간개방을 하기 위한 작은 배려다.
벌써부터 주변학교뿐 아니라 다른 지역 교사들도 하늘공원을 견학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허 교장은 "아이들에겐 꽃밭도 가꾸고 곤충도 관찰하는 체험학습공간이, 주민들에겐 삭막한 도심에서 편히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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