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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전향강요는 가혹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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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전향강요는 가혹행위다

입력
2003.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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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국에 가보고 싶습니다. 민주화된 조국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북한과는 어떻게 다른지 직접 확인했으면 합니다."2000년5월3일 미국 뉴저지주의 대서양해변 휴양도시 애쉬베리파크의 버클리오션비치호텔 2층 라운지에서 송두율교수는 간절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한민족포럼재단이 '21세기 통일시대를 위한 해외 한민족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연 첫 심포지엄에 참가한 송교수는 한국에서 온 낯선 기자에게 '귀향에의 염원'을 애타게 털어놨다.

"이념이 항상 지고지선인 줄 알았는데 환갑이 다 돼 가는 나이에 되돌아보니 무엇보다도 조국과 가족이 더 모질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그런데 내 조국은 나의 귀국을 허용하지 않으니 안타깝습니다"라며 두꺼운 안경너머로 검푸른 대서양 너머를 응시하던 그의 모습이 선하다. 북한까지 자주 드나들 정도의 '반한(反韓)투사'로만 여겨졌던 그의 어깨가 왜 그리 허전해보였던지. 그는 당시 심포지엄에 참가한 이인제 민주당 상임고문, 연세대 안병준 교수, 서경석 목사등 국내외의 쟁쟁한 인사 100여명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 채 이틀 내내 외톨이처럼 겉돌았다. 그가 다른 인사들과 안 어울렸다기보다는 다른 인사들이 그를 멀리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바로 그 송교수가 지난달 22일 37년만에 귀국해 검찰에 불려다니며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21일 그에게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가입, 잠입탈출, 회합통신 등 3가지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혐의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죄로 혐의대로라면 그는 마땅히 엄벌을 받아 마땅한 '대역죄인'인 셈이다. 그의 처벌수위를 놓고 우리사회도 극과 극으로 양분돼있다. 한 켠에서는 구속해 중형에 처하거나 추방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회견과 검찰조사과정에서 사실상 죄를 뉘우친 만큼 관용을 베풀자고 한다.

그러나 송교수 처리문제는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그는 사상이 채 여물기도 전인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독일유학을 떠났다. 학문적 풍토가 리버럴한 독일에서 그는 자신의 표현을 빌면 '분단극복을 위한 실천적 학문의 천착'에 평생을 바쳐왔다. 그 과정에서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고 18차례나 북한을 드나들었다. 그 같은 행적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1972년 10월유신을 계기로 남한에 군사독재체제가 들어선 것이 그로 하여금 '반정부주의자'에서 '반국가주의자'로 변신케 했다는 게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의 평가다. 그러나 검찰은 그가 명백히 전향하지 않았다며 22일 구속해 버렸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의 존재의미를 탐구해온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그에게 전향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마저 부정하라는 가혹한 고문이자 이중처벌이나 다름없다.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는데도 귀국행 비행기에 오른 순간 그는 이미 우리사회에 '귀순'해온 셈이고 '경계인'이기를 포기하고 "처벌을 받더라도 한국에 살고 싶다"고 고백한 순간 우리체제에 '백기 투항'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무부가 7월 '준법서약서'제도를 폐지한 것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러하다.

68년 1월 "청와대를 까부수겠다"며 침투해온 무장간첩 김신조와 87년 115명의 무고한 인명을 인도양에 수장한 대한한공 폭파범 김현희도 우리가 용서해주지 않았던가.

윤 승 용 사회1부장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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