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를 골간으로 한 민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정부 내의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라크 파병 문제를 둘러싼 정부 내의 논란과 더불어 총체적인 국정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정부는 22일 고건(高建)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민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논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개정안 심의를 다음주로 연기했다. 민법 개정안은 지난 주 국무회의에서도 같은 이유로 의결이 보류됐다. 고 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호주제를 폐지하면 가족이 상실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중요한 법안인데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다음 국무회의 때 충분히 검토한 후 결정하자"고 말했다고 조영동(趙永東) 국정홍보처장이 전했다.
이에 지은희(池銀姬) 여성부 장관이 "차관회의를 통과했으므로 심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고 총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의에서 일부 국무위원들은 호주제 폐지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회의에 제출된 민법 개정안은 호주제가 남녀평등 및 시대변화에 따른 가족 형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가(家)의 개념과 호주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지난 9일 차관회의에서 확정됐다. 개정안은 자녀의 성(姓)과 본(本)은 아버지를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이 가능토록 하고, 법원의 허가를 받으면 자녀의 성과 본을 바꿀 수 있는 조항도 담고 있다.
국무조정실의 한 관계자는 "두 차례의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에 대한 심의 및 의결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재신임 정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성부의 한 관계자도 "이익단체들이 각종 현안을 재신임 투표와 연계시키겠다고 하는 마당에 쉽게 결정내릴 수 있겠느냐"며 "총리 이하 국무위원들이 책임지려하기 보다는 시간 부족을 핑계로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김영주(金榮柱) 정책기획비서관은 "장관들이 호주제 폐지 법안을 처음 보는 것이어서 조금 생각을 해보자는 취지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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