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 인기 검색어 몇 개. '재신임' '30대 실업' '스와핑'…. 세상 살기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요즘은 산다는 말에서 황량한 느낌마저 받는다. 단지 먹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혼란스럽고 삭막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정말 희망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로 느껴지는 세상이다.그런데 여기, 가진 건 없으면서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곳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바로 KBS 월화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사진)의 주인공 상두다. 가수 비가 연기하는 상두는 자신의 연적인 민석(이동건)에게 '쓰레기'라는 말을 들어도 별로 할 말 없는 신세다. 제비족에다 딸까지 하나 있는데 그 딸이 언제 죽을지 모를 병에 걸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돈이 든다.
게다가 10년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첫사랑 은환(공효진)을 다시 만났는데 그 옆에는 직업 좋고 가문 좋고 성격까지 좋은 남자가 버티고 있다. 은환에게 떳떳하게 다가가려면 그나마 딸의 치료비를 댈 수 있는 제비족 일을 포기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인 일에서나 뭐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두는 언제나 긍정적이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고등학교 교사인 은환을 자주 만나기 위해 20대 중반에 다시 학생이 되어 학교에 가고, 은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제비족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럼 딸의 치료비는? 그는 낮부터 밤까지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면 된다고 믿는다. 그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늘 희망을 간직한 채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은 그에게 구김살 없는 웃음을 짓도록 하고, 그 웃음은 다른 사람들까지도 웃게 만든다. 처음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앞으로 꿋꿋이 나아가려는 그의 삶의 방식이 보는 사람들까지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나 '상두야, 학교가자!'가 오로지 긍정적 삶의 자세만을 노래하는 낙천적 드라마는 아니다. 이 드라마의 진가는 오히려 끝없이 긍정적이고자 하는 상두의 삶, 혹은 상두처럼 살아가는 드라마 속 등장 인물들이 냉정한 현실과 부딪칠 때 드러난다.
상두가 아무리 밝고 착하게 살려고 해도, 보잘 것 없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의 웃음에 함께 행복해 하던 사람들도 다시금 현실의 벽을 깨달으며 상두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되고, 방금 전까지의 웃음이 울음으로 바뀌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절실한 노력, 그러나 현실의 벽을 넘기에는 부족한 그 노력의 절절함이야말로 이 드라마에 진정한 감동을 부여하는 힘이다. 특히 구김살 한 점 없는 미소를 짓다가 잔인한 현실에 분노하며 울음을 삼키는 상두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비의 연기는 가수 연기자에 대한 편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비록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종영을 앞두고 있지만 '상두야, 학교가자!'는 올해 드라마 중 가장 따뜻한 작품으로 기억될 만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긍정과 희망이라니.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지 않은가.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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