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문제가 경기회복의 암초가 되고 있다. 올들어 특히 급증하기 시작한 신용불량자는 8월 현재 340만명을 넘어서 경제활동인구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신용불량자는 금융거래를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 따라서 신용불량자가 급증하는 것은 사회적 불안요인이 될뿐 아니라 내수위축과 경기침체, 소득감소,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지만, 좀처럼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와 개별 금융기관이 신용불량자를 줄이기 위해 채무 탕감 및 재조정을 골자로 하는 신용회복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까다로운 신청자격과 빈약한 채무재조정 내용
카드 7장으로 돌려 막기를 하다가 8,000만원의 빚을 지고 직장까지 잃은 김모(35·여)씨는 최근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찾았다. 이곳은 2개 이상의 금융기관에 3억원 이하의 빚을 지고 있는 다중채무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김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직장을 먼저 구하고 나서 3개월 후에 오라"는 것이었다.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입이 있거나 제3자의 소득으로 신청인의 빚을 갚을 수 있어야만 신청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해 지난해 10월 출범한 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는 9월말까지 전체 신용불량자의 1%를 약간 넘는 3만526명만이 신청했다. 게다가 신청자 중 상환기간 연장, 이자율 인하, 원리금 감면 등 채무재조정안이 확정된 사람은 1만773명에 불과했다. 그만큼 대국민 홍보가 아직도 부족하고 채무재조정 수혜자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채무재조정이 확정되더라도 원리금 감면폭은 총 채무액의 3분의1을 넘을 수 없고, 원금 감면은 금융기관이 회수를 사실상 포기한 상각채권만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어 신용갱생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위원회에 신용회복 지원을 신청하면 채무재조정이 확정될 때까지 미납 이자와 연체이자가 감면되고 채무상환도 동결되기 때문에 오히려 연 6%의 이자를 물며 빚을 갚아야 하는 채무상환기간이 채무자에게는 더 힘든 기간일 수 있다"며 "채무재조정 확정 때까지의 기간을 줄이더라도 채무재조정 내용을 현재보다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적 채무상환자의 상대적 박탈감과 모럴 해저드
최근 자산관리공사와 국민은행이 검토 중이거나 추진하고 있는 신용불량자 구제책은 획기적이기는 하지만 정상적 채무상환자의 상대적 박탈감과 연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금융기관에서 넘어온 부실채권을 대상으로 원금과 이자를 합쳐 최고 70%까지 감면해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국민은행은 자체 신용불량자 25만명을 대상으로 연 6∼7.5%의 이자로 최장 7년간 분할상환토록 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각 금융기관에 빚을 진 신용불량자들은 자신의 채무가 상각채권이 돼 자산관리공사에 넘어갈 때까지 버틸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카드 현금대출의 경우 연체이자가 20∼24%인데 국민은행은 이를 6%만 받기로 했으니 꼬박꼬박 연체이자를 물며 빚을 갚기보다는 처음부터 국민은행에 빚을 진 다음 신용불량자가 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규 국민은행 영업지원본부장은 "신용불량자 해결책은 결국 장기적으로 경기가 회복돼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나는 수밖에 없다"며 "채무자의 상환의지에 대한 엄격한 심사 없이 원리금 대폭 감면과 같은 조치들은 자칫 정상적 채무상환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부풀릴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김관명 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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