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존 업다이크는 1960년대 성적으로 해방된 미국 사회를 묘사한 '커플스'라는 작품을 써서 시사 주간지 '타임'지의 표지에 등장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이 작품은 뉴잉글랜드 타복스라는 마을에 살고있는 열 쌍의 부부들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이다. 이들은 함께 칵테일 파티를 하고 테니스를 즐기며, 정치와 소비생활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사교적이고 지적인 이들은 사실 지극히 불행하다. 그래서 성적으로 해방된 그들만의 은밀한 그룹을 만들어 사회 규범에서 일탈한 불장난을 하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섹스는 표현의 수단이고, 그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접착제며,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 마저 밀어내는 마취제 같은 방패였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후회와 환멸을 느끼게 된다.
문학적으로 볼 때, 이 작품에서 업다이크가 창조한 인물들은 실로 복잡하다. 그들은 덧없는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과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그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을 그 어떤 대안으로서 변태적인 섹스를 찾게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환멸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독자들을 일종의 관음자(觀淫者)로 만들어, 한 세대 전체, 아니 하위 문화 전체의 성적 도피를 증언하도록 하고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나듯이 간음하는 사회에는 '찰나적인 희열'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곧 환멸로 끝나는 사회이다. 스와핑 같은 음란 행위는 우리에게 아편과도 같은 희열을 줄지 모르지만,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 뒤에 찾아오는 환멸과 죄책감은 죽음만큼이나 클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극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 묘혈(墓穴)을 파는 것과 다름이 없겠다.
윤리와 도덕은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수 천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발견한 전통 규범이다. 최근 일부 젊은 지도층 부부들의 스와핑에 대한 보도는 행여 우리 사회의 소비적이고 관능적인 쾌감이 문명사회를 무너뜨리지나 않을까 두렵게 만든다. 혹자는 성적 탐닉이 기계문명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그것이 기계문명의 총아인 인터넷을 통해 독버섯처럼 번지는 것은 아이러니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던 우리 나라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외면하는 스와핑 커플이 6,000여 쌍이나 된다고 하니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우리사회에서 스스로 격리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태 동 서강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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