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核문제 타결 국면

이란이 21일 핵확산 금지조약(NPT) 부속의정서 서명 및 우라늄 농축 중단 입장을 밝힘으로써 이란 핵 문제가 타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약속의 구체적 실천이다. 이란 문제의 가닥이 잡힐 경우 핵 개발을 둘러싼 최대 이슈는 북한 핵으로 모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이라크 이란 북한 등 3개국 가운데 이라크, 이란의 대량살상무기(WMD) 논란은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어서 이란의 국내 역학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이란의 핵 개발 중단 선언

카말 카라지 이란 외무장관은 21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3개국 장관을 테헤란으로 초청, 회담을 가진 뒤 핵무기 개발 포기를 약속하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란은 우선 핵 의혹 시설에 대한 유엔사찰단의 불시 사찰을 허용하는 NPT 부속의정서에 서명하겠다고 밝혔다. 우라늄 농축 및 핵 재처리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적극 협조 등의 입장도 밝혔다.

이에 대해 유럽 3개국 외무장관들은 이란의 핵무기 포기 대가로 핵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인정했다. 그러나 하산 로우하니 이란 국가최고안보회의 의장은 "이란은 언제든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북한 핵 해결 촉구 여론 증폭 계기

IAEA와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제기할 때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미사일 개발을 주요 타깃으로 거론해왔다. 따라서 이란 핵 문제 타결이 이행 단계로 접어들 경우 핵 문제의 초점은 주로 북한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 북한의 핵 문제가 직접 연계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 영향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6자회담을 통한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사회 여론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북한에 핵 개발 동결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미국에게도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미묘한 입장 차

유럽 국가들은 이란의 조치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단 환영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의 BBC 방송은 "이번 합의는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란 수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국가에는 민간용 핵 개발도 필요 없다고 주장해온 미국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라면서 미국과 유럽 간의 입장 차를 분석했다. 또 이스라엘 군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완성할 경우 10개월 안에 핵무기 생산 능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며 이란의 핵 포기 선언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하타미 대통령의 승부수

하타미 대통령을 비롯한 개혁파는 이번 합의를 통해 미국의 공격과 유엔 제재에서 벗어나면서 민간용 핵 개발 허가를 얻어냈다고 선전할 수 있게 됐다. 개혁파가 이 같은 외교 성과를 계기로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개혁파는 핵 문제의 국제적 협상을 주장해왔으나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추종하는 보수 강경파는 "굴욕 외교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