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은 방문자라면 누구나 환영하는 열린 공동체였다. 양주에서 사는 27년동안 단 한번도 문을 잠그지 않은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풀무원에는 유명인사들의 방문도 잦았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함석헌 선생이 강연을 하기위해 들렀고 고 문익환 목사,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도 자주 찾았다. 방북사건으로 투옥됐다 1993년 풀려난 문 목사는 출옥 후 약 3일간을 풀무원에서 머문 적이 있다. 북한 이야기 등을 들려줬고 현미식이 맛있다고 칭찬한 기억이 난다. 서영훈 총재는 한때 흥사단을 이끌며 함석헌 선생을 따랐던 인연으로 함 선생이 타계하신 뒤에 풀무원을 가끔 찾았고 강연회가 있을 때마다 나를 초빙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공동체에 대한 소식은 외국에까지 알려져 영국과 독일, 미국, 일본 등에서도 풀무원을 찾았다. 일본에서는 주로 학생들이 찾았는데 독립학원과 애농학원 학생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3∼4일 동안 머물려 직접 일을 하면서 체험활동을 하고 돌아가곤 했다. 공동체 이념을 훈련시킬 목적으로 조선족 동포를 초청하기도 했다. 2명을 데리고 왔는데 모두 돈을 벌겠다고 나가는 바람에 이웃사랑의 실천이라는 이념을 전수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양주 풀무원에도 훈련을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은 가지각색이었다. 유기농과 이웃사랑의 실천이라는 공동체의 본래 취지를 배우기 위해 들어온 김종북씨나 정상일씨 같은 농촌지도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단지 술·담배를 끊기 위해 찾아오는 이도 더러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풀무원이 열린공동체가 된 것은 나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공동체하면 으레 공간으로 제한된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즉 종교나 믿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한데 모여 자기네들끼리 만족하며 살자는 게 보통의 공동체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는 공동체는 민족과 국가, 종교 같은 장벽을 넘어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함께 일하면서 굶주림을 극복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어디에도 쌓아놓지 말고 나누자는 나눔의 그것이다.
무소유에도 닿아있지만 그렇다고 무소유의 실천이 목적은 아니다. 무소유라면 '브로더호프' 같은 공동체가 더 잘 실천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에 있는 브로더호프 공동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소유개념을 포기한 200여명이 아무 근심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들이 만드는 가구제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공동체 또한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단절의 공동체였다.
언제부턴가 기도원이라는 공동체도 하나의 공동체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기도원은 좁은 공간에 모여 기도를 통해 믿음을 확인하자는 종교공동체일뿐 사랑의 실천과는 거리가 멀다. 종교공동체 가운데서도 진정한 사회봉사를 목표로 하는 단체도 없진 않다. 천주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어떤 단체에서는 신부님들이 병원 청소부로 자원봉사를 하고 종교의 장벽을 넘어 사랑의 복음을 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의미있는 공동체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풀무원은 완벽한 무소유를 실천하지도, 발벗고 봉사활동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 살자는 '끼리의 공동체'가 아니라 농사라는 경제활동을 통해 자립을 달성하고 남는 것을 나눌 줄 안다. 나는 이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주기도문을 실천하는 참 공동체라고 믿고있다.
인류의 문화는 지금까지 축적의 문화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눔의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서로 맞는 사람끼리 기도나 자급활동을 통해 평안과 즐거움을 얻는 것에서 그친다면 인류평화는 어디서도 기대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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