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꽤 찬 기운이 느껴진다. 가로수들도 노랗게 단풍이 들면서 낙엽이 지고 있다. 이맘때면 낙엽이 수북이 쌓인 교외의 호젓한 길을 걷고 싶다. 그래서 가까운 수목원이나 식물원의 오솔길이 그리워진다. 서울 도심에서도 지척에 위치한 국립수목원이 제격이리라.그러나 국립수목원의 입장은 결코 자유스럽지 않다. 방문하기 5일전에 예약해야 하고 그것도 하루 입장객을 5,000명 이내로 제한하니, 요새 같은 가을철이나 꽃 피는 봄철에는 예약도 쉽지 않다. 더구나 모처럼 맞은 휴일, 가족들과 함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울창한 전나무 숲에도 들어가 보고 싶지만 국립수목원은 토, 일요일은 물론 공휴일에도 휴원을 하니 애써 찾아간 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다.
1999년 우리나라 국립수목원이 개원됐을 때 국민들은 정말 많은 것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개원 이후에 전시 식물 종들의 보전과 광릉 숲의 보존을 명목으로 방문과 이용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것이 큰 불만이다. 외국의 유명한 국립수목원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어느 때이든 입장이 가능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조치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국립수목원이 자리잡고 있는 광릉 숲은 조선조 제7대 세조대왕의 능인 광릉의 부속림 중 일부로 무려 500여년간 엄격하게 보존되어 왔다. 이 일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동, 식물들이 널리 분포하여 생물 종 다양성 및 산림생물자원의 보고로 학술적 가치를 높게 인정 받고 있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입장객을 제한할 수 밖에 없다. 한번 파괴된 자연환경은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기 어렵다. 우리는 환경파괴의 가장 큰 요인이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사람에 의한 인위적인 훼손에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수목원, 식물원의 기능에는 식물의 보전 기능, 식물 유전자원의 도입 및 개발, 학술 연구, 생물 서식지 제공 외에 시민에게 교육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국립수목원의 보다 자유스러운 이용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의 국립수목원은 처음부터 완전한 공개를 목적으로 계획되고 조성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역적인 특성은 물론이고 부대시설 등에 있어 일반 방문객들을 배려하기보다는 종 보전 및 자연환경 보전에 더 초점을 둘 수밖에 없는 제한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에 비해 많은 식물 종들이 자생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서 국립수목원은 국가의 명실상부한 식물 종 보전 기관으로서 지금보다 더 엄정히 통제, 관리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목원, 식물원의 역사가 매우 짧다. 급격히 높아지는 국민의식과 주5일제 근무라는 사회적인 추세에 대응하여 계획단계에서부터 완벽한 개방을 염두에 두고 별도의 지역에 국립수목원 분원을 조기에 조성해야 한다. 현재의 광릉 국립수목원은 종 보전지역으로 엄격히 통제하고, 전국 각지의 분원은 지역적인 특성과 전시식물 종에 맞추어 국민들이 자유스럽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안 영 희 중앙대 원예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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