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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28> 자급자족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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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28> 자급자족 공동체

입력
2003.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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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원식품에서 농산물가공을 위탁 받으면서 공동체는 보다 조직적이고 현대화됐으나 공동체 생활의 기본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매일같이 8시부터 일과를 시작해 12시 종소리가 울리면 오전 일이 끝났다. 공동체 식구들은 종소리가 울리면 평화의 기도를 올린 다음 공동으로 사용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은 모두 우리 손으로 직접 기른 채소와 곡식, 고기였다. 그것도 유기농법으로 길렀기 때문에 환경호르몬이나 농약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영양도 만점이었다.

유기농법을 실천하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노하우를 계속 받아들였기 때문에 농장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은 그야말로 최상의 무공해식품이었다. 과도한 질소성분의 유해성을 알리는 어떤 일본 책자를 보고 저질소농법을 도입한 것도 그런 예의 하나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더라도 질소성분을 과도하게 함유한 농산물은 육류나 생선과 반응해 '니트로스아민'이라는 발암물질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기질 비료를 만들 때 질소성분이 많은 가축의 분뇨 등을 되도록 적게 배합하는 '저질소농법'을 도입했다. 대신 과실을 크고 굵게 하는 인산과 칼륨을 많이 함유한 '과린산석회' 등을 많이 섞었다. 이렇게 만든 유기질 퇴비를 사용한 뒤에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경우보다 수확량도 많아졌다.

매주 금요일마다 가족회의를 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가족회의에서는 주로 영농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지만 가끔씩 가족들간의 불화가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저마다 생각과 자라온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말썽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아이들 문제가 많이 거론됐다. 공동체 초기에는 잘못을 저지르거나 못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도 "너희 엄마, 아버지에게 말한다"는 정도로 지나쳤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다 싶어 나중에는 남의 자식도 나의 자식처럼 훈계하고 혼을 낼 때는 따끔하게 그 자리에서 혼을 내도록 했다. 그랬더니 이게 또 화근이 돼서 "왜 남의 자식을 나무라느냐"는 식의 섭섭한 감정이 나오고 때론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가족회의는 이런 문제들을 꺼내놓고 화해를 시도하는 자리였다.

양주로 옮긴 초기에는 공동체 성원 1인당 매달 5,000원 정도씩의 용돈을 지급했다. 대부분 의식주를 공동체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돈 쓸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수중에 단돈 1,000원이라도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는 요구가 많아 용돈을 지급했던 것인데 도리어 낭비만 조장하는 것 같아 나중에는 이 제도를 없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인가부터는 다시 제도를 부활해 지금은 2만원 정도를 매달 지급하고 있다.

교육은 누구든 고등학교까지 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취직을 위한 대학교육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그렇지만 공동체 식구들도 대학수준의 교양이 필요할 것 같아 매년 겨울에 단기대학 형식의 강의를 개설했다. 매년 말이면 1년 농사와 살림살이에 대한 결산이 끝나 사실상 할 일이 없는 농한기로 들어가기 때문에 공동체 식구들이 무료하기도 한 철이다. 이 때를 이용해 각계의 강사를 불러 하루 3∼4시간 정도씩 강의를 듣는 식으로 단기대학을 운영했다. 강의는 곤충이나 토양, 비료 등에 관한 주를 이뤘지만 철학 같은 교양과목도 있었다. 강의를 부탁한다고 내가 연락을 하면 대부분 교수들은 무료봉사인데도 흔쾌히 응해 줬다.

한삶회공동체는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가능한 완전 공동체에 가까웠다. 유기농으로 지은 농작물을 먹어서 그런지 큰 병치레를 하는 식구가 없어 병원신세 질 일도 없었다. 가끔씩 외부에서 유명인사들이 찾아와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기 때문에 사회에서 격리되는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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