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소강 상태를 보이던 SK비자금 수사가 21일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의 100억원 수수 사실 시인으로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앞서 두 차례 소환조사에서 혐의를 줄곧 부인하던 최 의원은 이날 "돈 받은 사실 자체는 인정하겠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는 사용처를 향해 줄달음질 치고 있다.그러나 최 의원은 개인적으로 횡령한 돈이 없음을 거듭 강조할 뿐, 받은 돈을 어디에 전달했는지, 최종적으로 무슨 용도에 썼는지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현재로선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기 전, 이회창 전 후보의 대세론이 지배하던 지난해 11월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SK가 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이던 최 의원에게 돈을 전달한 사실만 확인됐을 뿐 그 전후 사정은 불투명하다. 100억원이 한나라당이나 이 전 후보의 사조직에 전달됐는지, 또 이 돈이 대선자금 용도로만 쓰였는지, 수수 과정에 개입한 사람이 최 의원 뿐인지 등이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돈의 규모로 볼 때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층이 개입했거나 적어도 인지했을 개연성은 크다. 또 100억원이 정상적으로 영수증 처리되지 않은 점은 한나라당에 공식적으로 유입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건 실체를 알고 있을 최 의원이 끝까지 자금 용처에 대해 함구할 경우 수사팀의 부담은 커진다.
이 경우 사건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현대비자금 200억원 수수 사건처럼, 의문만 남긴 채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의문을 해소하려면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자금 집행내역을 샅샅이 훑어야 하지만 그러면 사건이 자꾸 '정치적으로' 커져 검찰에겐 큰 부담이다. 마찬가지로 용처 문제는 입을 열지 않은 통합신당 이상수 의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 이번 사건이 '노무현-최도술' 그리고 '이회창-최돈웅'의 대칭구도로 읽히는 것도 검찰로선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검찰은 현재 최 의원의 '입'을 압박하기 위해 당시 통화내역과, 개인채무 변제 여부를 추적, 100억원 중 일부가 개인적으로 사용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관계자가 "죄질이 나쁘다"고 말한 것은 개인비리로 최 의원을 몰아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검찰은 나아가 이 전 후보 외곽 인맥의 총본산인 '부국팀'을 포함해 대선 때 재정을 담당했던 한나라당 관계자들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는 있다. 그러나 "누군가 말하지 않으면 현금의 사용처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한 검찰 관계자의 말처럼 현단계에선 수사진척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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