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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중동 여성인권 변화의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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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중동 여성인권 변화의 싹

입력
2003.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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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어린이의 인권 향상을 위해 투쟁해온 이란의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여성 인권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악명 높은 이슬람 극단주의를 표방한 탈레반 정권의 지배로 '이슬람이 여성을 억압한다'는 오해를 퍼트리는 데 일조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곧 여성 인권을 크게 향상시킨 새 헌법 초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다른 아랍국들에서도 여성을 사회의 절반으로 인식하려는 크고 작은 움직임들이 감지된다.유엔개발계획(UNDP)은 20일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아랍 인간개발 보고서 2003'을 발표해 "바레인과 이집트, 시리아, 오만 등에서 여성 의원들이 선출됐으며 고위 공직에 진출하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아직도 저개발 국가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문맹률이 매우 높게 나타나는 등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2001년 말 미국에 의해 탈레반 정권이 패퇴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새 헌법 초안이 수일 내 발표될 예정이다. 외신들은 새 헌법이 여성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결혼을 금지하고 결혼 지참금 제도를 폐지하는 등 여성을 억압해 온 제도들을 상당수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전했다. 또한 새 헌법은 여성에게 상당한 수의 의회 의석을 배분해 여성의 정치 참여를 확대할 방침이다.

국민의 99%가 수니파 이슬람 교도인 북아프리카 모로코는 최근 여성 인권을 억압해온 이슬람식 결혼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안을 발표했다. 국왕 모하메드 4세가 주도한 이번 개혁안은 여성의 결혼 허용 연령을 15세에서 18세로 높이고, 여성이 강제 결혼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다처 허용도 첫째 아내가 불임일 경우 등으로 한정하고 남편이 두 번째 부인을 맞으려 할 경우 첫째 부인이 이혼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모하메드 4세는 "개혁안은 남녀 차별을 금지하는 코란(이슬람 경전)의 정신에 전적으로 부합한다"고 말했다.

올 7월 총선으로 새 의회를 구성한 쿠웨이트는 19일 개원한 의회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포함한 광범위한 개혁안을 심의할 계획이다. 정부는 앞서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선거권, 피선거권 등 완전한 참정권을 부여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오만은 이달 초 실시된 의회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전체 성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이 조치로 3년 전 선거에서 7.5%에 불과했던 여성 유권자는 절반 가까이로 늘어났다. 다만 유권자들의 무관심으로 여성 투표자는 남성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요르단에서는 간통한 친인척 여성을 살해하는 악명 높은 '명예살인' 관습을 없애기 위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원은 8월 말 이 같은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성의 이혼할 권리를 보장하는 또 다른 법안도 의회에 제출된 상태지만 보수적인 하원에서 잇따라 제동을 거는 바람에 입법이 차질을 빚고 있다.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고는 해도 상당수 이슬람 국가에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가장 보수적인 왕정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지난 주에는 여학생 17명이 통학버스 안에서 베일을 벗어 머리를 내보였다는 이유로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이달 초 사우디가 발표한 사상 첫 선거 실시 계획에도 여성의 투표권 허용 여부에 대한 언급은 없어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았다. 사우디는 3년의 논란 끝에 지난해에야 여성에게 사진이 들어있는 개인 신분증을 발급했다. 이전까지 여성들은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의 신분증에 '소유물'처럼 기재돼 있었다. 상당수 아랍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먼 나라 이야기이며 결혼 및 이혼에 있어 대부분의 아랍국은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세계 인권단체들의 거센 비난을 사고 있는 불합리한 제도 외에 경제활동 참여나 교육 기회에서도 아랍 여성들은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아랍 전문가들은 아랍권의 여성 인권 실태와 관련, 이슬람교의 본질이 여성을 억압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보다는 일부에서 이슬람교의 정신을 왜곡하고 현실 사회에 과도하게 확장 적용하면서 여성의 지위를 훼손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에바디가 노벨 평화상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나는 결코 이슬람교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랑스러워 한다. 이슬람과 여성 인권은 상충되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란 내 여성 인권을 위한 자신의 투쟁이 자칫 이슬람 전반에 대한 투쟁으로 오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바디는 이슬람의 엄격한 율법 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이란의 종교적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슬람 관습법인 샤리아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가부장적 性굴레… "명예살인" 여전

이슬람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이른바 '명예살인(honor killing)'이다. 이는 가문의 명예를 지킨다는 구실로 부도덕한 행위를 한 여성을 죽이는 것이다.

이런 처형은 대부분 미혼, 혹은 이혼한 여성이 성 관계를 갖거나 기혼 여성이 혼외 정사를 했다는 이유로 행해진다. 명예살인은 2000년 제네바 국제 인권위원회가 실태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국제사회에 알려졌으며, 이후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요르단, 파키스탄, 터키 등 이슬람 지역에서 여성이 명예살인에 의해 희생되는 비극이 끝나지 않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아미나 라왈은 이혼 후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따라 투석형에 처할 뻔했다가 지난 달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아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터키의 켐지 알락은 오빠와 남동생이 던진 돌에 맞아 머리가 깨지고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7개월 동안 앓다가 지난 6월 끝내 숨졌다. 당시 미혼이었던 그가 힐라 아칠이라는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영국에 살고 있는 무슬림 압달라 요네스는 지난 해 자신의 16살짜리 딸이 기독교도 남자친구를 사귀고 가출하려 하자 딸을 여러 차례 칼로 찌른 후 목을 베고는 자살을 시도했다. 요르단의 25살 먹은 한 여성은 혼외정사로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남동생에 의해 흉기로 살해됐다. 동생은 "가족의 명예를 깨끗이 하기 위해서 누나를 죽였다"고 말했다.

인권기구 마다드가르는 "파키스탄에서 지난 8개월 동안 최소한 637명의 부녀자가 명예살인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또 2002년 요르단에서는 22명, 심지어 이슬람계 이민자가 많은 영국에서도 12명이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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