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31년 간의 사랑 끝에 지난해 12월 베트남인과 결혼에 성공해 현재 베트남에 살고 있는 북한여성 리영희(55·왼쪽)씨가 3살 때 헤어진 아버지 리호진씨를 애타게 찾고 있다.영희씨는 1971년 기술연수차 북한에 온 팜응옥카잉(54·하노이시 사이클연맹회장·오른쪽)씨와 직장인 흥남비료공장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후 편지로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다 지난해 5월 북한을 방문한 천득렁 베트남 주석의 간곡한 부탁을 북한당국이 받아들이면서 결혼에 골인한 순애보의 주인공.
영희씨 부녀는 1950년 10월 함경남도 흥남시 유정동에서 생이별을 한 뒤 지금까지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다. 흥남공대 출신으로 철도국에 근무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인민군에 징집된 영희씨의 부친은 유엔군의 북진 무렵 심한 열병으로 제대를 한 뒤 집에서 휴양을 하고 있었다고 영희씨는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아버지 호진씨는 흥남비료공장에서 근무하던 권진, 욱진, 영진씨 등 형 3명과 함께 남쪽으로 가는 피난민을 태운 수송선에 올랐으나 영희씨의 어머니는 막내딸 성희(1991년 사망)씨의 해산을 앞두고 있던 상태여서 피난길에 동행하지 못하고 현지에 남았다. 어머니는 이후 흥남 외갓집에서 성희씨를 낳은 뒤 다시 시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영희씨는 59년 세상을 등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름을 각각 리숭술씨와 주씨로 기억했다.
영희씨는 "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예상되는 불이익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아버지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며 나도 아버지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베트남에서 뉴스를 통해 이산가족들의 재회 소식을 접하고 나서 아버지에 대한 비정한 감정을 버리고 대신 혈육의 정을 새롭게 느끼게 돼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제 60세를 바라보는 황혼기에 접어든 만큼 만약 살아계시다면 82세가 됐을 아버지를 꼭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면서 "아버지가 운명을 달리 하셨다면 이복동생이나 가까운 친척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애타는 심정을 전했다.
/하노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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