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한아버지! 천지에 올라 자연스레 터져나온 감탄사는 이 한 마디 뿐이다. 그 신령스러운 모습을 처음 대하는 순간의 감동을 달리는 표할 길이 없다. 언어의 부족, 형용사의 결핍이다. 1926년 7월 장군봉에 올라 천지를 굽어보며 그렇게 예탄(禮嘆)했다는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白頭山 覲參記)를 읽은 기억이 왜 그 순간에 떠오른 것일까. 그 감동을 표현하기에 그 말이 가장 적절한 것일까.10월7일 오전 11시40분.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들이 백두산 봉우리 모습과 천지의 물빛을 시시각각 바꾸어 놓는다. 길을 서두르는 흰 구름 옆으로 재구름이 따라가고, 그것들이 봉우리 저편으로 사라졌는가 싶으면 또 다른 구름장이 몰려 온다. 그 사이 청명한 하늘에 해가 드러나면 수면은 온통 은물결과 눈부신 햇살의 잔치 마당이다.
해가 났을 때와 구름 속에 숨었을 때, 한낮과 아침 저녁, 계절과 날씨에 따라 천지 물빛은 완연히 다르다.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요술이다.
천지는 화산호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해발 2,267m 높이에 있다. 그 신령스런 호수를 감싸고 우뚝우뚝 솟은 여러 봉우리들 모습도 그렇게 변한다. 눈 덮인 봉우리들이 푸른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모습은 상큼한 10대의 미인이지만, 구름 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때는 요조숙녀의 모습이랄까.
호반에는 마른 풀들이 낮게 누었고, 비와 바람에 씻기고 깎인 바위와 언덕이 기묘한 형상으로 호수를 에워싸고 있다. 10리쯤 될까, 호수 너머 왼편 하늘에 뾰족하게 치솟은 봉우리가 백두산 주봉인 장군봉(2,744m)일 터이다. 그 옆은 향도봉일 것이고, 오른쪽 봉우리가 마천우일 게다.
태초에 화산이 터지면서 거대한 분화구와 깎아지른 듯 경사가 급한 봉우리들이 생겨났을 터이다. 그 뒤의 수많은 화산활동으로 깎이고 패이고 화산재가 덮여 오늘의 모습이 된 봉우리들은 그 이름처럼 용맹스런 장군의 형상이다.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북한 쪽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중국 변방을 에돌아 민족의 성산을 찾아온 분단의 감회가 새삼스럽다.
카메라 렌즈의 방향을 이리저리 옮기며 촬영에 몰두하다가 우연히 뒤돌아본 달문의 모습은 산봉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아름다움이다. 천지의 물이 북쪽 저지대로 흘러내려가는 개울(승사하)을 양쪽에서 호위하듯 우직하게 버티고 선 모습이 마치 거대한 석문 같다.
민족신앙의 성지에는 감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잦아드는 호반의 낮은 언덕 아래 관광객 주머니를 노리는 천막상점이 자리 잡은 것은 여간 실망이 아니다. 중국 당국에 거액의 이용료를 내고 먹을 것과 기념품 등속을 파는 두개의 천막은 성지에 버려진 오물이다.
/백두산=글·사진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 교통·숙박
연길 구간은 인천공항에서 주 3회 운항하는 직항로를 이용하면 개인적으로도 갈 수 있다. 연길-백두산 구간은 연길 호텔에서 관광버스나 마이크로 버스가 있다. 편도 4시간30분 거리여서 새벽에 출발한다. 숙소는 장백폭포 아래 여관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장백산 대우호텔, 천상온천관광호텔(사진) 등 우리 기업이 지은 호텔에는 조선족 종업원이 많아 언어소통에 문제가 없다. 요금은 2인실 기준으로 400∼500위안 정도고, 몇이서 잘 수 있는 온돌방은 좀더 비싸다. 다음 날 연길로 돌아가는 교통 편은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나가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도백하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요금은 150∼200 위안, 이도백하-연길 버스 값은 30위안 미만이다
● 등산로
백두산 산문을 지나 모든 관광차량의 종점인 주차장에 이르면 천문봉과 천지 등산로가 갈라진다.
여기서 지프로 바꾸어 타고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길을 20여분 오르면 북쪽 최고봉인 천문봉 턱밑에 닿고,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30여분 걸으면 장백폭포 아래 여관 마을이다. 여기를 지나면 곧 노천온천 지대. 냇가에서 무럭무럭 김이 솟아오르는 낯선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면서, 해발 1,900m 고도에 이르러 입장료를 내고 20여분 걸으면 장백폭포다.
달문으로 흘러 넘친 천지 물이 1,250여m를 얌전히 흘러가다 낭떠러지를 만나 급전직하, 68m를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 벼락이 장백폭포다. 멀리서부터 우레 같은 소리가 들리다 산 모롱이 하나를 돌아들면, 거대한 수직암벽에 비단 세 폭이 걸려있는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가까이 갈수록 커지는 우레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실비처럼 날리는 물보라가 살갗에 차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 암벽 위에서 어떻게 저 많은 물이 쏟아질 수가 있는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폭포 옆 매표소에서 천지 입장료를 내고 오른쪽 산비탈에 놓인 계단을 오른다. 설악산 울산바위 등산로처럼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한참 오르면 이번에는 좁은 터널이 나온다.
낙석으로부터 관광객을 보호한다고 계단에 벽과 지붕을 만들어 놓았다. 전에는 반드시 안전모를 써야 했던 곳이다. 편리해진 것은 고맙지만, 밑에서 보면 결정적으로 폭포의 경관을 망치는 흉물이다. 천지 호반의 천막이야 철거하면 그만이지만 이건 정말 너무 하다.
숨이 턱에 차는 고통을 견디며 한참을 더 오르면 터널이 없어지고 평평한 눈길이다. 오른 편 사면을 석축으로 마무리하고 바닥을 잘 고른 길에 정강이가 빠질 만큼 내린 눈이 곱게 다져졌다. 얼마 가지 않아 냇가에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빈병에 물을 담느라 냇물에 담근 손이 깜짝 놀랄 만큼 시리다. 한 모금 마른 목을 추기니 오장육부가 얼어붙을 것 같다.
다시 길을 재촉해 10여분을 걸으면 드디어 천지 호숫가. 첫 매표소를 출발한지 1시간 40분, 폭포 매표소에서 1시간 10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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