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의 11월 전면실시 방침을 백지화함으로써 복지부는 또 한번 행정의 신뢰를 잃었다. 특정 질병에 대해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내도록 해 과잉진료를 막고 환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복지부는 이 제도를 추진해 왔다. 두 달 전에는 모든 의료기관에 강제 적용하는 내용의 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까지 했었다.그런데 벌써 6년 전부터 일부 의료기관을 통해 시범적으로 시행해 온 제도의 문제점을 이제사 발견했다는 것인가. 시범사업기간이나 입법예고를 준비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정변경의 사유가 갑자기 드러난 것은 아닐 것이다. 한 마디로 이번의 방침 변경은 의료계의 반발과 압력에 행정당국이 두 손을 든 결과라 할 수 있다.
포괄수가제 도입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진료의 질 저하와 진료의 자율권 침해라는 의료계의 반발은 어느 나라나 똑같다. 외국에서도 그런 과정을 통해 어렵게 정착될 수밖에 없었던 제도다. 복지부가 외국의 사례를 몰랐을 리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운 의료정책마다 갈등이 컸고, 의료계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며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그런 상황일수록 더 확고한 정책의지와 치밀한 준비·점검이 필요한데도 복지부는 '선택시행 검토'등으로 조금씩 말을 바꾸다 철회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전면실시 철회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불러 내년도 건강보험료 수가협상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고 다른 제도의 정착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는 질병군을 7개에서 10개로 늘리는 대신 공공의료기관에만 강제 적용하고, 2005년부터 제대로 해 보겠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대강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꼬인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은 새로운 정책을 입안해 실시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